[신검무정] <제19화> 대륙의 기인들
기사입력 1996년 09월 10일 15시 37분
드디어 더 이상 길이 이어지지 않았다. 황보백령을 비롯한 중인들은 전원 말과 마차에서 내려야 했다. 그때에도 황보백령의 피리는 멈추지 않고 있었다. 부드러운 곡조는 중인들의 심금을 울리며 멀리멀리 퍼져 나갔다. 어디선가 음산한 바람까지 불어오더니 잠시 후엔 안개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마치 황보백령의 피리소리가 안개를 불러 들이는 듯한 장면이었다. 점차 계곡은 어둠과 안개로 인해서 지척을 분간하기 어렵게 변해갔다.
분위기는 금방이라도 무엇인가가 튀어나올 것처럼 으스스하였다.
"왜 멈추지 않고 계속 피리를 부는걸까?"
끝내 참을성 없이 중얼거리는 조소영. 왕녀 아비라가 뇌까렸다.
"누군가에게 연락을 꾀하는 것이겠지."
그녀의 추측은 맞았다. 안개를 뚫고 갑자기 두둥실 풍등(風燈)이 날아오는 것이 아닌가. 자세히 보니 등불이 날아오는게 아니라 누군가가 등을 밝히고 나타난 것이다.
황보백령의 피리가 멈추고 모용추는 짧게 신음을 삼켰다.
`저건 황금사원의 궁수월이 아닌가?'
놀랍게도 등불을 들고 나타난 여인은 일심부에 의해서 중상을 입고 실종된바 있는 총관 남해선자 궁수월이었다. 그녀는 꼽추노파와 함께 의외의 장소에 등장한 것이다.
"귀빈들의 방문을 환영하는 바입니다."
궁수월은 예의를 차리고 있었다. 그러나 미동도 않고 있는 꼽추노파 철타파(鐵駝婆). 꼽추노파는 단지 증오감으로 팽배한 눈동자를 굴리며 중인들을 무섭게 노려볼 따름이었다.
으스스한 광경. 문득 의귀취선이 중얼거렸다.
"만일 내 안목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그녀는 황금사원의 내전호법(內殿護法) 철혈마녀(鐵血魔女)가 분명하다."
꼽추노파가 그 흉폭한 시선으로 의귀취선을 찾았다.
"날 알고 있다니 귀하의 위명도 대단할거 같군. 하지만 그 별호는 20년 전이나 가치가 있었고 지금은 그저 쓸모없는 꼽추 철타파이지."
모용추가 중인들 틈을 비집고 나서며 예리하게 꼬집었다.
"언제까지 쓸모없이 시간을 허비할 작정인가요? 당신들 옛 친구의 해후는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장소에서 해두는게 어떨까요?"
벽천무상검 남궁도가 다소 팽팽한 분위기를 조종하고 나선다.
"더 어두워지면 매우 곤란할거 같소. 자, 서두릅시다."
황보백령이 고개를 끄덕이자 즉시 궁수월이 앞장섰다. 그 뒤를 묵기량이 바싹 따르고 황보백령과 남궁도가 나란히 걸었다. 철타파는 맨 마지막에서 낙오자가 없도록 등불을 밝히며 따랐다. 자연 그 노파의 바로 앞에는 이소야가 걸었다.
중인들은 어둠과 안개로 인해서 전진이 매우 조심스러웠다. 불쑥 철타파가 이소야의 어깨를 두들겼다. 돌아보는 이소야.
"자네는 누군가?"
갑작스런 철타파의 질문. 이소야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담담하게 대꾸한다.
"의귀취선의 제자요."
철타파는 섬칫하게 눈을 부라렸다.
"넌 언제나 이렇게 태평하냐? 어째서 전혀 경계를 하지 않는거냐? 내가 눈곱만치도 두렵지 않다는거냐?"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