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검무정] <제19화>대륙의 기인들(20) ♣
기사입력 1996년 09월 04일 16시 29분
부녀의 애잔한 모습을 보며 이소야는 눈을 감았다. 다시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어둠이었다. 칠흑같은 암흑속에서 무엇인가 떠오를 듯 하였다. 여인(女人). 그녀는 이소야에게 천천히 다가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누구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의 얼굴은 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굴없는 여인. 이소야가 경기들린 아이마냥 놀라서 눈을 떴을 때 조소영은 가만히 그의 손을 잡아 주었다. "놀라지 말아요." 소영의 움푹파인 보조개가 이소야의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 이름도 알수 없는 들꽃의 향기가 그녀에게서 풍겼다. '이 소녀가 얼굴없는 여인의 주인인가?' 이소야는 생각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확신할 수 없었다. 조소영은 분명 아련한 기억 속의 여인보다는 어렸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준비되어 있지 않소." 다소 차가운 말투. 조소영의 교구(巧驅)가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무엇이요? 무엇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뜻인가요?" "그대가 나의 부인이라는…." "믿을 수가 없는 건가요?" "아니오. 아직 실감나지 않는다는 뜻이오." "그렇지만 난 이미 상공의 모든 것을 알아요." "난 그대의 조그마한 것도 모르오." "내게 뭘 원하는건가요?" 이소야는 조소영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놀랍게도 그녀의 눈빛은 밤하늘의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내게 …시간을 주시오." 그녀는 이소야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안았다. "그래요. 기다리겠어요. 하지만 오랫동안 참을 수는 없어요. 난 당신이 그리워요." 이 말을 하는 순간 조소영의 표정은 장난꾸러기처럼 익살맞게 찡그려졌다. 그녀는 깜찍스러우면서도 능숙하게 이소야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소야는 어린애처럼 말했다. "노력하겠소." 조소영은 하마터면 웃음이 터져나올 뻔한 것을 간신히 참으며 이소야의 손을 끌어 당겼다. "이제는 일어나서 움직여야해요." 이소야는 그녀를 따라 침상에서 일어났다. 몸은 놀랍도록 가뿐하였다. 전혀 중상을 입은 흔적도 없었다. 단지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난 것 처럼 기분이 멍할 뿐이었다. "내가 왜 기억을 잃었소?" "부친을 따라 약초를 구하기 위해서 준령(峻嶺)을 헤매시다가 그만 실족을." 기억을 더듬으려고 애쓰며 소영을 따라 다른 지하 밀실로 들어서던 이소야는 그자리에서 흠칫 놀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