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검무정]<제19화>대륙의 기인들(16)♣
기사입력 1996년 08월 31일 14시 46분
**"이소야를 제거한 순간 난 이미 살아 있는게 아니다"
두 자루의 마도(魔刀).
악마의 혓바닥처럼 살의를 날름거리며 이효봉의 전신으로 폭사되어 오는 그 칼은 공포를 동반한 죽음의 그림자였다.
이효봉은 두려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초연한 얼굴에 희미한 미소만이 감돌고 있었다.
`그 아이를 제거한 순간 난 이미 살아 있는게 아니다.'
대황의 거인은 늙어 있었고 그래서 후회도 많았다. 주름살 하나하나 마다 세월의 기억과 회한이 드리워져 있지만 그래도 가장 참혹한 것 하나… 스스로 명예롭게 여기던 자식을 베어야 했던 것.
"으아아아아."
포효가 사람의 입에서 분노로 터져 나왔다.
이효봉은 수중의 검을 난무하며 마도의 공격을 정면으로 충돌해갔다. 생사를 도외시한 반격. 끔찍하고 참혹한 결과는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한차례 굉음의 소용돌이가 스쳐간 후,
"하하…학."
헐떡이는 숨소리는 핏물과 범벅이 되어 앞가슴으로 흘러내렸다. 이 장 밖에서 나域굴고 있는 이효봉은 계속 꾸역꾸역 피를 토해낸다.
그의 검은 얼음 조각 처럼 부서져 땅바닥에 널려 있었고 의복은 갈가리 찢겨져 전신의 상흔(傷痕)을 드러내고 있었다.
무현왕자는 목전의 처참한 광경에 넋을 잃은 얼굴이었다.
"이…런…."
환류검의 비릿한 조소가 어둠을 훑혔다. "끝장났군. 사형의 잔인구식(殘忍九式)을 상대할 수 있는 무림 고수는 대륙에도 없구려."
잔인마도는 쌍도를 거두지 않고 있었다. 그의 냉담한 눈빛에는 일말의 놀라움이 떠올라 있다가 사라졌다.
"잔인구식중 제 칠식까지 사용한 상대는 이 늙은이가 처음이다."
사제 환류검이 잔인마도의 곁으로 다가섰다.
"대단한 노인이오. 신분이 궁금할 정도로."
이효봉은 숨을 헐떡였다. 호흡이 몹시 곤란한 듯 고통스러운 얼굴이었다. 무현이 한 걸음에 뛰어들었다.
"장주…."
이효봉은 더욱 비참한 표정을 지었다. 무현이 걱정되는 것이다. 하지만 몸은 전혀 생각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무현은 그런 이효봉의 마음을 읽고 있는 모양이었다.
"고정하세요."
이효봉은 문득 이소야를 떠올렸다. 그 아이라면 잔인마도와 겨루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적어도 자신 보다는 낫지 않았을까? 단숨에 이렇게 비참해지지는 않으리라.
무현은 피투성이의 이효봉을 안고 일어섰다.
잔인마도와 환류검은 목전의 겁없는 청년의 행동에 대해서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있었다.
무현왕자는 그들를 무시하고 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