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가 쓰는 ML메시지] 승패는 정신력
기사입력 1996년 08월 27일 15시 08분
올시즌 를 모두 뛰면서 느낀 점중 하나는 정신력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점이다. 거의 40번 가까이 마운드에 오르면서 때로는 아주 컨디션이 좋을 때도 있었지만 반대로 엉망인 경우도 있었다. 특히 구원 투수로 뛸 때는 언제 나가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익숙지 않은 나로서는 상당히 힘들었다.
게다가 구원 투수에 익숙해질만하면 다시 선발 투수로 뛰게 되는 일도 힘들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컨디션이 나쁜 경우라고 해서 졸전을 벌이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 4월7일 서 첫 승리를 거두는 날은 마르티네스의 부상으로 갑자기 마운드에 올랐는데 정신도 없었고, 공을 잡은 손이 곱을 정도로 날씨는 추웠다. 그러나 나는 4회 동안 7개의 삼진을 잡으며 감격적인 승리를 거뒀다.
지난주 몬트리올전에서도 4이닝 동안 6개의 삼진을 잡으며 안타를 내주지 않았으나 사실은 경기 전에 먹은 빵이 안좋았는지 설사를 하고 힘든 상태였다. 6월20일 커브스 원정경기에서 나는 연장전 구원 투수로 나서 승리 타점까지 올리며 승리 투수가 됐는데 사실 그 전날은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시즌 내내 홈런을 맞지 않다가 전날 연속 홈런을 맞는 등 처음으로 아주 졸전을 벌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단 마운드에 오르자 불펜에서 피곤하고 지친 상태는 아랑곳 없이 열심히 던져 승리했다.
복통을 수반한 독감으로 훈련도 제대로 못했을 때 러셀 감독이 마운드에 올려 야속했던 일도 있지만 그날도 나는 짧게나마 안타 없이 삼진 2개를 잡으며 1 이닝을 던졌었다. 반대로 최고의 컨디션으로 마운드에 올랐다가 초반부터 안타를 얻어 맞은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따지고보면 실력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정신력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컨디션이 나쁘거나 상황이 힘들수록 더욱 공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서 던지게 된다.
그러니까 무너지는 경기는 하지 않는 것이다.
이제 한달 남짓 남은 정규 시즌.
힘들고 지친 것도 사실이지만 한국인의 정신력으로 버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