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검무정] <19화> 대륙의 기인들

기사입력 1996년 08월 25일 16시 12분


천극진(千極震). 그의 눈에서는 눈물 대신 핏발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당금 중원무림에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가장 위대한 무인(武人).

전 무림방파들이 경외하는 중무련의 맹주가 바로 그 사람이다.

"누구의 짓인가?"

목청은 가느다랗게 울려 나왔지만 거기 배있는 기도는 산악을 압도한다. 군사 방일비는 부복할 뿐이다.

"맹주…!"

중무련의 맹주 천극진은 불신의 눈빛으로 그녀를 더듬었다. 여인은 붉은 비단으로 두 눈을 가리고 있었다.

"부용아?"

맹주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염정선라 석부용.

그녀의 사악한 요사스러움은 꺼져가는 불길에 기름이 부어지 듯 순간적으로 타올랐다.

"아…의부(義父)시군요. 맹주님이시죠? 그렇죠?"

"그래."

눈이 없는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왜 이제야 오셨나요? 너무 늦었어요."

"그래."

"부용은 병신이 되고 말았어요. 내 눈은 더 이상 의부를 볼 수 없게 되었어요."

"그래."

"뵙고 싶어요. 미치도록 의부의 얼굴이 그리워요. 지금 날 보고 계신 건가요?"

"그래."

석부용의 눈을 가리고 있는 비단 천이 흠뻑 젖었다. 그녀는 손을 내밀어 허공을 더듬었다. 천극진이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폐관(閉關)의 성과는 있으셨던가요?"

천극진은 그녀의 손을 힘주어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석부용은 물론 보지 못하고 있었다.

"의부님은 분명히 성공하셨을거예요."

"그래. 맞았다."

"내 두 눈을 이 지경으로 만든 작자들을 찾아 복수해 주세요."

천극진은 발작하듯 소리쳤다.

"어떤 놈들이냐?"

중무련의 군사인 천도서생 방일비가 공손히 보고했다.

"혈마사의 청부자객 묵기량입니다."

천극진의 노안(老眼)에서 신광이 폭사되었다.

"그가 왜?"

방일비는 망설이지 않았다.

"염정선라 석부용은 동영(東븀)의 신비문파인 일심부 출신으로 본 중무련에는 목적을 지니고 침투한 간자(間者)이옵니다."

놀랍고도 충격적인 보고였다. 그러나 천극진의 반응은 그보다도 훨씬 더 놀라운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