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검무정] 제19화 대륙의 기인들 ⑦
기사입력 1996년 08월 21일 15시 38분
황보백령의 결심에 달려있다니?
그녀는 이미 타르무의 제안을 간파하고 있었다.
"왕야에게 몸을 의탁하라는 말씀인가요?"
타르무는 표정이 야릇하게 변하더니 급기야는 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핫-- 과연 놀랍소. 한 마디에 내 의중을 궤뚫어 보고 있으니... 어떻소? 만일 내 청을 받아 준다면 천하에서 그 누가 황금사원을 함부로
얕볼 수 있겠소?"
그의 말은 옳았다.
당금 황제의 이종사촌인 왕야 타르무의 권력이라면 중원무림도 양보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더구나 무림을 주도하는 중원무림연맹은 이들
황족의 비호를 받고 있는 실정이 아니던가.
난처한 입장은 이제 벽천무상검 남궁도였다. 그는 설마 사태가 이렇게 변하리라고는 전혀 상상치 못했던 것이다.
타르무의 유혹은 멈추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난 황금사원의 멸망을 조사하여 소저의 복수를 도와줄 수도 있소."
황보백령의 미모에 오래전부터 미혹당해 있었던 왕야 타르무. 그는 이런 기회를 맞이하자 자신의 재간을 모조리 동원하고 있었다.
"소저는 그저 나만 따르면 되오. 물론 경호원을 두지 않는 조건으로."
그는 일찍이 이소야에게 당한 적이 있으므로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다. 당시에 이소야는 고야공주를 구해 떠났던 것이 아니었던가.
말문이 막혀버린 남궁도는 반쯤 얼이 빠진 얼굴로 황보백령과 타르무를 번갈아 응시할 뿐이다.
황보백령은 아직 내상이 완쾌되지 않은 듯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녀는 힘들게 입술을 떼어냈다.
"무림인은 신의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지요."
"물론이오."
"소녀는 이미 남궁대협과 봉황의 문을 열기로 합의하였으니 이제 그 약속을 어기기가 어렵습니다."
"아!"
타르무는 탄식을 토했다.
하지만 황보백령의 영민한 눈동자는 그 빛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가문의 복수를 위하여 분연히 일어선 보기드문 여인이 아니던가.
"그렇다고 해서 왕야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것은 별개의 문제이지요."
타르무의 표정이 삽시간에 바뀌었다.
"그럼... 의사가 있다는건가?"
황보백령은 담담한 미소를 떠올렸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입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중무련과 황실, 그리고 일심부와 함께 봉황제전을 벌이는 겁니다."
마음이 다급한 타르무였다.
"그 뒤에 나의 청을 받아주는거요?"
황보백령은 타르무의 다짐을 반박하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보여줄 뿐이었다.
"서두르지 않아도 해는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