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 소설] Love Love Love.... 이규형(69)
기사입력 1996년 08월 15일 14시 58분
==== 물장사 이야기 (5) ===. 믿을 수 없게도 그해 겨울까지 몇 천만원을 손에 움켜 쥘수 있었다. 사업가가 몇달 동안 3,4천만원 벌었다는 건 얘깃거리가 안되지만 여대생이아르바이트로 그런 돈을 벌었다는 건 같은 대학생들에겐 놀랄만한 사건이다. 체인점의 사장은 약속대로는 아니지만 신사의 품위를 잃지 않는 범위내에서 그녀에게 사례했다. 실제로 그녀도 그런 아이디어 정도 제공했다고 그 이상의 돈을 받는 것은 숙녀의 품위를 유지하지 못할 것 같아 돈이야기는 더이상 하지 않았다.그러나 실제로 사장과 그녀 사이에 금전문제가 언급되지 않은 더 큰 이유는 두사람 사이가 예사롭지 않게 발전한 때문이다. "우리 딱 1년만 사귀어 보고 결혼하자. 어차피 수희도 대학 졸업하려면1년 남았고 나도 집안에서 완전히 독립하려면 ….". 불문학과 출신의 사장은 충분히 매력있는 남자였다. 부잣집 출신으로세련된 매너와 교양을 충분히 갖춘 남자다. 전국 체인점이란 사업 아이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서른살 치고는 배짱도있고 사내다운 건강함도 넘쳤다. 그녀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NO할 조건은 별로 없는 좋은 남자였다. 특히이 젊은 사업가가 집안 얘기를 할 때면 그녀는 속으로 항복하고 만다. 거기엔 그가 뼈대있고 실속있는 실업가 집안의 둘째 아들이란 점도 있었지만반대로 그녀는 어머니도 둘 아버지도 둘인 때문이다. 국민학교때 이혼한 엄마, 아빠는 그 이후 각각 재혼해서 그녀는 두집을왔다갔다 하며 살았다. 그녀의 자유분방한 성격은 기실 그런 부모들에 기인한다. 엄마와 계속 함께 산 그녀의 친언니와는 달리 아빠집을 왔다갔다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자기 또래 소녀들은 맛볼수 없는 많은 용돈과 자유를 맛봤다. 이쪽이 내키지 않으면 저쪽으로 간다. 양쪽 집엔 자기와는 피가 섞이지 않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있다. 진짜 아버지와 진짜 어머니는 되도록이면 딸이 원하는 건 다 해 주었고거의 눈치를 보다시피 하며 해줬다. 지금 혼자 따로 나와 자취하며 살 수있는 것도 그런 덕분이다. 그건 사실 그녀도 야단맞지 않을 정도의 공부는 했고 학교에서 문제아로분류되어 부모가 불려가게 하는 일은 결코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사장의 이름은 ‘유준수 ’. 이름만큼이나 그는 참으로 준수한인물이었다. 수희는 자신으로선 더이상 준수한 인물을 만나지 못할 거란판단을 했고 미래는 그에 맞춰 설계했다. 대학생활도 자연스레 흐지부지돼버렸다. 참으로 지긋지긋하게 입시에 시달려 다시는 십대생활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만큼 어렵게 들어간 대학이건만 저녁이후 물장사생활과 병행하다 보니 그렇게 힘들고 재미없을 수가 없었다. 일단 영업시간이 끝나면 둘이 밤시간을 나누는 게 당연한 일과가 되었다.새벽시간은 거의하고 해도 좋을 만큼 야외의 호텔로 돌아다녔다. "형은 나 말고 몇 여자와 접촉했어?". 준수는 빙글빙글 웃는 채 당연히 대답을 않는다. "난 비정상인 거 아냐?". 그녀는 사랑이 끝난 뒤면 늘 아쉬운 표정으로 물었다. "좋으면 됐지. 인마 그건 차차 느끼게 되는거야. 처음부터 황홀하게 정신 잃고 하는 여자가 어딨니?". "그러니까 대답 좀 해봐. 다른 여자들은 어땠어? 내가 문제가 있는 건지 형이 문제가 있는 건지 연구 좀 해 보려고 그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