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보] ○이창호9단 ●목진적2단 박카스배 천원전 ♣
기사입력 1996년 08월 09일 15시 31분
## 본선 토너먼트 제7국 제 3 보 (36~67) = 에서 날아드는 메달바람에 잠시 잊었던 더위가 또다시 온몸을 휘감는다. 홍익동 한국기원 4층에 자리잡은 기사에실도 사람들의 출입이 훨씬 뜸해졌지만 그래도 오가는 거리에 무차별로 쏟아지는 열기만 참고 한국기원으로 들어서면 기사실만큼 쾌적한 휴식처도 많지 않다. 요즘은 몇몇 원로급들과 객원기사 오송생 9단의 얼굴이 자주 보인다. 1만원자리, 혹은 점심내기 상대만 찾으면 하루의 피서계획이 완료된다. 산으로 바다로 고생 보따리 짊어지고 피서를 떠나는 것보다 현명한 처사가 아닐까 싶다. 아직, 피서를 떠나지 않았다면 올해 피서비용쯤은 예기치 않은 수해로 불행을 당한 사람들을 위해 쾌척하시고 좋은 상대를 찾아 한판의 수담으로 더위를 잊는 게 어떨지. 백 36, 38로 우하귀를 완전하게 점거. 그 사이에 흑은 무엇을 했는가. 흑 43~53까지 백 일단을 쫓으며 울타리를 쌓았지만 하변은 백 40으로 구멍이 뚫려 별게 없다. 흑이 공격의 대가로 얻은 것이라고는 고작 우변 10여집 정도. 눈을 씻고 찾아도 웅장했던 사연성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흑의 초반취향이 실패 라는 뜻. 흑 53으로 봉쇄할 때 하나 끊어둔 백 54가 일류감각. 지나는 길에 가볍게 던져본 응수타진이지만 대개 이런 수들은 중요한 시기에 제 목소리를 낸다. 백 56은 타개의 상용수단인데 흑은 쉽게 놓아주지 않겠다고 작정한 듯 흑 57로 안형을 박탈한다. 강수다. 달아나는 와중에 36, 38로 실리를 챙긴 백의 소행(?)에 대한 노여움도 실려 있다. 그러나 어쩌랴. 백은 이미 준비가 돼 있다는 듯 60~66까지 유유히 달아난다. 수로를 통해 빠져나가는 물줄기처럼. 여기서 목 2단은 불과 2분 남짓 궁리하다가 흑 67을 두었다. 당연히 백 `가'로 넘으리라는 생각인데. `1인자는 무엇이 달라도 다르다'고 해야 할까. 예상치 않은 곳에서의 역습. 이 한수로 의표를 찔린 목 2단의 손끝이 얼어붙는다. 과연 어느곳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