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 소설] LOVE LOVE LOVE........이규형(63)
기사입력 1996년 08월 08일 15시 28분
=== 방송국은 울지 않는다(13) ====. "윤지희씨를 처음 만난 게 10년 정도 됐나요. 뭐 특별한 건 없고 그나이때 애들 만나서 친해지고 그러다가 언제 헤어졌는지도 모르게 헤어지고 어느날 방송국에 와서 다시 얼굴을 보게되고 그런 겁니다". 현표는 대수롭지 않는 듯 얘기를 털어놨다. "내가 알기로 그런 게 아닌데... 지금 정PD가 얘기하는 건 언제 헤어졌는지, 왜 헤어졌는지도 모르겠다는 식인데...". 기자는 취재노트에 필기를 하다가 눈빛을 날카롭게 세우며 물어왔다. 뭐야, 이건. 도대체 어디까지 안단 말인가? 윤지희의 고등학교 짝꿍정도되는 애가 신문사에 어디까지 얘기한 것일까?. 결국 현표는 초콜릿 이별도 털어놓지 않을 수 없었다. 초콜릿 모델로일약 유명해진 여자애는 달콤한 인생을 시작하지만 당시 재수생인 현표는세상에서 제일 쓴 초콜릿 맛을 봐야 했다고... 며칠 후 신문의 기사는 예상했던 바이지만, 1.5배 이상으로 부풀려 있었다.
인기드라마 `와일드'는 이미 10년 전 정현포의 머릿속에서 구상되어 있었다라든가, 당시 재수생이었던 그가 실연의 충격으로 자살미수를 했고, 살아난 그가 죽기보다는 죽기살기로 방송국 PD가 되자, 그래서윤지희를 마음대로 연출하자고 생각했다는 등. 드라마 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현표와 지희 관계가 적혀 있었다. 조금튀긴 감은 있지만 별로 나쁜 기사는 아니고 무엇보다 현재 드라마 `와일드'의 홍보에도 괜찮고해서 현표는 이 사건을 그냥 넘기려 했다. 그러나 연예계의 남녀관계 특종기사를 달콤하게 본 것이 정현표의 뼈저린 실수였다.
톱스타의 러브 스토리는 이렇게 단한번으로 끝나는 게아니었다. 계속해서 추적되어 본인의 기억 속에서 조차 사라진 이야기들이 하나둘 밝혀지게 되며 후속기자들이 연이어 독자들에게 서비스하게 마련이다. 윤지희 입장의 이야기가 신문에 실린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녹화장에서 어차피 부딪치면서 일을 하게 되는 것이 두 사람의 현실인 만큼, 일하는 도중 사진을 자연스럽게 찍하게 마련이다.
두 사람의 웃는모습이 신문에 엄청난 크기로 실렸다. `윤지희 결혼 결심'. 결정적인 헤드 카피였다. 현표로선 더 이상 이이야기가 시끄러워지면 곤란했다.
사람들은 진짜 그렇게 믿을 거 아닌가?
신문 1면에 실린 윤지희와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그는 더이상은 부풀리지 않도록 항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결혼기사 속에 있는 윤지희의 멘트였다. `아직도 좋아하지요. 그러니까 지금 드라마를 같이 하는 거 아니겠어요'가 그것이다.이것이 진짜 윤지희의 말이라면 항의는 통하지 않는다. 그런데 정작 사건은 다른 신문에서 터졌다. 지난 번 `사랑이 들린다'때 윤지희의 `눈물사건'은 방송국의 대조작극이었음을 터트린 것이다.드라마 제작부는 난리가 났다. 모든 신문이 시청자를 우롱했다고 몰아대는 것이다. 방송국은 이럴때 늘 침착하고 냉정하다. 현표는 신속하게 `와일드'연출자 자리에서 짤렸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