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피서] 대형 서점-은행 창구로 나들이
기사입력 1996년 08월 08일 13시 54분
## `에어콘 따라잡기'. 가마솥 더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밤낮의 의식주 형태를 아예 에어콘 지향적으로 바꾸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도심속 한여름나기에 에어콘만한 것도 없다는 판단 때문인 것.
에어콘이 있는 곳을 찾아 한시적으로 거주지 이동을 꾀하는 가정이 있는가하면 에어콘 바람이 생쌩 부는 직장에서 밤샘 야근을 자처하는 직장인도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결혼 2년째를 맞는 회사원 정희경씨(26. 성북구 상월곡동)는 "한돌을 넘긴 아기의 몸에 온통 땀띠가 돋아 잠정 주거지를 아예 에어콘이 있는 시댁 으로 옮겼다"며 "8월 중순까지는 계속 그쪽에서 출퇴근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아파트촌의 안방마님 사이에서는 에어콘 있는 집의 안주인이 최고 인기를 구가중. 대다수 전업 주부들이 에어콘이 있는 집으로 모여 낮시간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올들어 12평형짜리 에어콘을 설치한 전업주부 박선경씨(29. 노원구 중계동)는 "하루 평균 5~6명 이상의 주부들이 수다 명목으로 찾아온다"며 "어린 아이들까지 데리고 오면 놀이방을 방불케할 정도"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직장인들은 아예 밤샘 야근을 자청하기도.
열대야가 계속되는 8월 중순까지는 에어콘이 있는 회사에서 야근을 하고 대신 8월 후반과 9월 초반에 집에서 쉬겠다는 계산인 것. 회사원 김준서씨(30. 중구 태평로)는 "동료 직장인들이 애틀랜타 올림픽을 보려고 앞다퉈 집에 들어갈때도 혼자 연일 야근을 자청해 윗분들의 사랑까지 독차지할 수 있었다"며 좋아했다. 시중 은행의 현금인출소들은 돈 한푼 들이지 않고 24시간 에어콘 바람을 쐴 수 있다는 점에서 폭발적인 인기. 서울여고 1학년 사진부원 일동은 지난 4일 오후 12시부터 2시까지 약 2시간여를 2평 남짓한 홍대입구 현금인출소에서 보냈다. 노성미양은 "3학년 선배들의 입시 100일을 앞두고 격려 카드를 만들 겸 들렀다"며 "가난한 학생들 에게 이곳만큼 실속있는 피서지도 없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이밖에 선풍기가 있는 맛있는 집 보다는 에어콘이 있는 시원한 집을 먼저 찾는 것도 에어콘 따라잡기의 단적인 예. 냉방병등 부작용이 적지 않으나 불볕 더위가 계속되는 한 소형 서점보다는 대형 서점을, 일반 시내 버스 보다는 좌석버스나 지하철을 선호하는등 시민들의 `에어콘 따라잡기'는 그치지 않을 것으로 기상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