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저편에] 사랑이 오고가는 네가지 풍경
기사입력 1996년 08월 07일 15시 18분
##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빔 벤더스 공동연출 그날은/ 비답게 비내리고/ 키스에 지친 두 입술 그뒤부터/ 바람답게 바람불고/ 연애에 지친 두 사람 두 마음이/ 한없이 정다워서 이제 밤을 알겠네/ 두려웁지만 기다려지는/ 이 슬픈 장난도 알겠네. 뇌출혈로 쓰러져 투병중인 시인출신 이세룡감독의 연애시 `한없이 정다워서'를 생각나게 하는 영화. `구름 저편에'는 84세의 이탈리아 노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13년만에 발표했다고 해서 화제가 됐던 영화다. 독일감독 빔 벤더스와의 공동연출이지만 `블로우 업'(국내에서 출시된 비디오 제목은 `욕망')과 `정사' 등으로 기억되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은 여전히 인간풍경의 황량함이라든가 공허, 나른한 감정의 흐름 등을 완벽한 화면으로 잡아내 보이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인간관계중 으뜸으로 치는 사랑에의 탐구가 `구름 저편에'의 테마다. 여기에서는 모두 4개의 에피소드로 관객에게 사유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첫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강렬한 사랑의 열정에 사로잡힌 카르멘(이네스 사스트르)과 실바노(킴 로시). 그러나 두 사람은 육체적인 사랑을 포기한다. 오랜 시간 뒤에 다시 만났을 때도 실바노는 카르멘의 아름다운 몸매를 애무 하기만 하고는 그냥 떠나가고 만다.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 그것을 만족시키는 것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노감독의 화두에 다름아니다. 두번째 에피소드는 `구름 저편에'의 처음부터 끝까지 화자의 입장으로 등장하는 영화감독(존 말코비치)과 젊은 여인(소피 마르소)의 광기서린 사랑을 그린다. 욕망에 사로잡힌 두 남녀의 폭발적인 정사, 그러나 첫번째 에피소드처럼 두 사람도 서로를 떠난다. 그런가하면 세번째 에피소드는 다분히 신파적인 드라마구도로 짜여 있다. 바람난 남편(피터 웰러)에게 절망한 여인(화니 아르당)이 역시 아내에게 버림받은 남자(장 르노)에게 위안을 얻게되는 내용인데, 소외의 아픔이 진득하게 묻어난다. 네번째 에피소드는 수도원에 들어갈 소녀(이렌느 야곱)와 그녀를 쫓아 성당까지 따라가는 청년(뱅상 페레)의 엇갈린 사랑을 통해 수도자의 삶과 그 신비로움에 관해 의문을 제기한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는 이 4개의 에피소드에서 굳이 메시지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현대인의 퇴락한 도덕률을 꾸짖지도, 사랑의 순수를 찬양하지도 않는다. 그저 대가의 시선으로 이 모든 관계들을 드러내보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얼마전 타계한 크지쉬토프 키에슬롭스키의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과도 흡사하다.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즐기지 못하면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 하지 못하면 즐기지 못한다. 기라성같은 대배우들이 작은 역들을 기꺼이 맡은 것이나 소피 마르소 등의 여배우들이 헤어누드를 마다치않고 전라의 열연을 보여준 것도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이같은 카리스마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