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검무정] <제18화> 애욕의 소용돌이 (56)

기사입력 1996년 08월 07일 14시 18분


아귀는 이제 결정을 내려야 했다. 영악한 그는 목전의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는지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들은 충분히 죽을 수 있다.'

아귀는 본래 상관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그렇지만 막상 떠나려고 하니 마음이 또 그게 아니었다. 일찍이 그는 추월야접에게 목숨을 구원 받은 적이 있었지 않던가. 대황삼대고수중 한 명이던 무혼검 구유기의 정사(情事) 장면을 훔쳐보다가 황천행이 될 뻔 했던 사건. `이래서 남에게 신세를 지면 안되는 법이야.'

아귀는 투덜거리며 영민한 눈동자를 굴렸다.

추월야접과 모용추가 한바탕 드잡이질을 벌이고 있는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역시 그녀는 모용추의 상대가 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청죽생의 도움이 없으면 일 초도 넘기지 못할 듯 위태로웠다.

`여자들은 저게 문제라니까.'

아귀는 몸을 날렸다. 그의 경공술은 상상했던 것 보다도 민첩했다. 아귀가 부지런히 송림을 빠져나와 사원이 묶고 있던 전각으로 향하였다. 사원은 이 뜻밖의 방문객을 취기가 감도는 눈빛으로 물었다.

"넌 참으로 끈덕지구나."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좋은 병장기를 수집할 수 있겠소. 우리 가문은 오직 그게 생명이오." "그렇지만 아직 난 죽지 않았으니 내 무적도를 회수할 생각은 버려라."

"알고있소."

사원은 본래의 담담함으로 돌아가 아귀를 외면한다. 다시 이야기를 꺼낼것 같지가 않다. 그는 묵묵히 침상위에 좌정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귀가 침묵을 깼다.

"당신은 이소야를 포기했소?"

사원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하지만 충분히 놀라고 있음이 아귀에게 전달됐다. 기어코 사원의 입술이 떨어졌다. "넌 아직도 내가 이소야와 대결할 것이라고 믿느냐?"

사원과 모용추의 대화를 엿들은 아귀다. 그는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소야와의 승부는 반드시 이뤄져야 하오."

사원은 남의 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넌 그 이유를 알고 있구나."

아귀의 영악한 머리는 멈출줄을 모른다.

"물론이오. 신검과 무적도를 수집한다면 우리 가문의 수 대 조 조상님들도 무덤 속에서 벌떡 일어나 춤을 출테니까요." 사원은 실소를 머금었다.

"넌 역시 비상한 녀석이다."

"나는 당신과 이소야가 반드시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할 수 있소."

"고맙구나."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오."

"뭘 원하냐?"

"내가 청혼을 했던 여자가 있소. 그녀가 지금 위험에 빠져 있으니 당신이 구해줘야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