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 소설] LOVE LOVE LOVE......이규형(60)
기사입력 1996년 08월 05일 14시 54분
+++++ 방송국은 울지 않는다(10) ++++. 그러나 `와이드'는 코미디 드라마는 아니었다. 오히려 처절한 사랑을주제로한 멜로 드라마였다. 이윤지라는 여자 PD를 놓고 그녀의 사랑을 쟁취하려는 프로그램의 젊은 작가와 방송국 중견 앵커 간의 삼각관계가 주 스토리였다. 남자 작가는 미혼, 앵커는 부인과 사별한 상태. 세 사람의 트라이앵글 러브스토리는 대부분 방송국 녹화장 세트에서 이루어진다. 현표는 부조정실에서 윤지희의 연기를 NG내고 다시 시켰다. 그녀에게 마음이 있지만 괜히 여자친구를 소개시켜 달라는 작가의 억지에 윤지희가 건성건성 답하는 장면이다. "윤지희씨, 이 부분은 코미디가 아닙니다. 바깥에서 할 때보다 연기를 조금만 눌러줘요. 작가는 이미 사랑을 느끼고 있고 이윤지 역시 야릇한 감정을 품고 있는 거예요. 장난 같지만 장난이 아닌 그런 감정 알지요?". NG를 낸 윤지희는 그말을 받아 스튜디오 녹화팀들을 웃겼다. "정말 장난이 아니네요". 정현표가 녹화를 끝낸 뒤 제작국으로 돌아왔을 때 별 반갑지 않은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 얼굴을 알고 지내는 스포츠신문의 방송담당기자가 그의 책상 앞에 진을 치고 있었다. "확인 좀 할일이 있는데... 정 PD 지금 바쁩니까?". "김기자는 왜 그렇게 흥분해서 그러슈. 뭐 한건 대차게 건졌다는 표정인데...". 나이가 비슷한 처지인만큼 피차 말을 높이는 것도 낮추는 것도 아닌묘한 톤으로 얘기가 시작됐다. 평소 맥주한잔 커피한잔 마셔본 적이 없는 사이라 성격이 파악된 기자도 아니다.
다만 지금 상대기자의 얼굴에서 특종을 하나 물었구나하는 분위기인건 눈치로 알수 있었다. "윤지희 말이에요? 언제부터 알았습니까". "왜요. 윤지희씨한테 무슨 문제 생겼어요?". 이거구나. 이미 뭔가 알고 덤비는 게 분명하다. 현표는 짐짓 침착한 척 한 호흡을 쉬며 말했다. "김기자한테 누가 뭐라 그럽디까? 내가 윤지희한테 뭐 얻어 먹고 주인공으로 캐스팅했다구?". "왜 이래 정 PD. 내가 지금 뭐 묻는 줄 알아요. 나쁜기사 쓰겠다는것도 아니고 그냥 사실대로만 얘기해 주면, 난 정 PD 얘기한 그대로 쓸게요". "헛 참. 내가 뭐 쓸거리가 된다구?". 현표는 순간적으로 적지 않게 망설였다.
윤지희와의 옛날이야기를얘기 안한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일인가! 그건 아니다. 그럼내가 윤지희와 10년전에 연인사이였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몹쓸 일인가?그건 더더욱 아니었다. 누구나 첫사랑이 있는거고 대부분 깨진다. 첫사랑에는 그 `첫'자가들어갔기 때문에 둘째, 셋째 사랑이 계속된다는 것이고 깨진 사랑이 됐음을 의미하는 단어이기도 한다. 그런데 지금 중요한 건 그거다.
지탄받을 일도 아니고 몹쓸 일도 아니지만 거짓말을 해서는 나중에 신문사의 무차별 폭탄을 모면할 길이없을 것이다. "잠깐만요. 이거 결재 안받으면 제작비 못받는 거라서...여기 좀 앉아 있어요. 금방 다녀 올게요". 현표는 국장실로 결재판을 들고 가며 자리를 일단 피했다.
결재판안에는 물론 서류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