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 소설] LOVE LOVE LOVE......이규형(59)
기사입력 1996년 08월 04일 14시 08분
그날 저녁TV를 보던 사람들은 뒤집어지게 웃었다.
새로 시작한 드라마는 여름 오후 어떤 남녀가 골목길을 걸어가고 있는데서 시작했다. 그들이 걸어가는 저쪽 모퉁이에서 갑작스럽게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미친듯 튀어나왔다. 검은 선글라스를 낀 1백여명이나 되는 사내들은 와아! 하는 함성과 함께 도망쳐! 도망쳐! 온다! 온다!하고 외쳐대며 죽을 힘을 다해 골목길을 메우고 달려나왔다. 길길이 날뛰며 도망쳐 대는 그들을 보며 길가던 사내는 비즈니스가방을 가슴에 안고 후다닥, 같이 튀었다. 시원한 원피스차림의 여자는 으악!하고 비명을 지르 며 영문도 모르고 뒤로 도망을 쳐댔다. 검은 복장의 사내들은 골목에서 줄줄이 나타나며 계속 외쳐댄다. "온다! 도망쳐!". 남자와 여자가 그들 속에 섞여 순식간에 10여m를 달려나갔을 때 어느순간 1백여명의 남자들은 걸음을 딱 멈추며 제자리에 스톱했다. 그들이조용해지자 앞으로 내달리던 남자와 여자가 머쓱해져서 뒤를 돌아다 본다. 1백여명이 남자들은 마치 합창을 하듯 하늘을 향해 외쳐댔다. "온다 온다! 가을이 온다!". 그들은 마치 군에서 제식훈련하는 사람들처럼 열을 맞추어 자기들이튀어 나왔던 골목으로 사라져 가며 합창했다. "가을이라 가을바람 솔솔 불어오니∼". 두 남녀는 황당해져서 사라져가는 1백명을 바라보며 서 있다. 가방을 가슴에 안고 서있던 남자가 여자에게 넌지시 말했다. "저...이것도 인연인데...커피라도 한자...". 여자는 앵, 토라지며 가버린다. "웃겨! 정말 이 사람까지...". 그때 골목에서 그들 남녀 앞으로 웃으며서 뛰어오는 여자가 있다. 여자 PD역의 윤지희가 몰래 카메라팀과 나타난 그녀는 원피스를 입은 여자에게 거의 허리를 96도쯤 꺾고 살랑살랑 까불어 댄다. "웃기죠. 정말 웃기죠. 제가 이 웃기는 프로그램의 PD 이윤지예요.죽여주세요. 사람들이 하도 스트레스받고 찌푸리고 있어서 좀 웃겨보려고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거든요". 여자 PD는 이번엔 뒤에 서 있는 가방안은 남자에게 살살 웃어댄다. "아저씨 커피는 저랑 마세요. 제가 살게요". PD는 원피스 입은 여자의 손을 덥석 잡으며 얼굴을 가까이에 대고 유심히 본다. "어머 손이 너무 곱다. 언니! 여태까지 뭐했어! 방송국에 안오고! 가요! 빨리, 텔런트 계약하러...". 멍하게 서있는 그들 남녀에게 카메라맨과 서있던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저 이 프로 AD입니다. 이거 요번주에 TV프로로 나갈 거래요.
두분 괜찮으시겠죠. TV에 얼굴나가도...". 말할 필요도 없이 PD역할을 맡은 이윤지는 윤지희이다.
그리고 AD이하 카메라맨도, 가방을 안은 남자와 원피스차림의 여자도 모두가 방송국의 알려진 탤런트다. 하마디로 새로운 드라마 `Wild'는 어떤 몰래카메라팀을 주인공으로 한 방송국배경의 미니시리즈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