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한국야구 어쩌다 이 지경이 …'
기사입력 1996년 08월 02일 16시 14분
"낯 뜨거워서 얼굴을 들 수가 없어. 한평생을 야구와 함께 살아오면서 이렇게 부끄러운 적은 처음이야."
1일 신촌 세브란스병원 별관 831호.
반세기를 야구에 몸바친 원로의 두 눈은 안타까움으로 가득차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풍규명옹(73).
밥은 굶어도 야구장엔 나가야 한다는 그는 학생야구의 대부이자 90년 한국야구의 산 증인이다.
지난 71년엔 중-고야구연맹창립의 산파역을 맡았고 기록원으로, 또 야구협회 경기이사로 아마야구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풍옹은 전 선수 이해창씨의 장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풍규명옹은 1주일째 병원에 누워 있다.
급작스러운 불청객이 찾아온 건 지난달 25일.
애틀랜타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야구팀이 졸전끝에 호주 미국 에 3연패한뒤 이날 전마저 지자 TV중계를 지켜보던 풍옹은 갑자기 쇼크상태를 보여 병원으로 급히 옮겨졌다.
진단결과는 뇌졸중.
고령인데다 갑자기 신경을 쓰는 바람에 뇌로 통하는 혈관의 일부가 막혀 버린 것이다.
장남 풍태현씨(38)는 "병원 문턱에도 와본 적이 없는 분인데 쓰러지신 것을 보면 당신께서 정말 충격이 컸던가 봐요"라며 걱정스럽게 풍옹 곁을 지키고 있다.
코에는 음식물 대신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해 튜브가 꽂혀 있고 거동도 불편한 상태지만 풍옹의 목소리는 또렷하기만 하다.
" , 이런 돈 많은 학교들이 설치니까 이 지경이 되지. 대표팀 선발위원들도 문제고…. 무엇보다 요즘 얘들은 옛날같이 뭔가 해보겠다는 근성이 없는게 가장 안타까워."
삼시세때전에 소주 반병씩은 마셔야 소화가 잘 된다는 애주가 풍규명옹.
앞으로 영원히 못 마시게 될 소주 보다는 근성있는 한국야구에 대한 그리움이 더 크다.
고희가 넘은 이 야구인의 걱정을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