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 소설] LOVE LOVE LOVE.....이규형(51)
기사입력 1996년 07월 27일 14시 01분
++++ 방송국은 울지 않는다(1) ++++. "울어! 무슨 개소리야. 눈물 펑펑 나게 울란 말이야!". PC가 소리치자 부조정실 안의 스태프들이 먼저 얼어 붙었다. 밑의 녹호장에선 더욱 살벌한 분위기가 되어 있을 것이 틀림없다. 40이 안된 PD가 50줄의 고참스태프들을 앞에 하고 안하무인으로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대고 있다. "녹화장에 와서 안 울겠다는 건 무슨 수작이야. 연습땐 한마디 말도안하다가 말이야". 부조정실 안의 녹음감독과 스태프들은 약간 걱정된 표정으로 그를 말렸다. "이감독, 잘 해서 그냥 가지, 이러다 녹화 펑크나면 어떡할라구 그래? 기껏 다잘해가지고...". "안됩니다. 이 부분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데가 아니잖습니까. 콘티대로 가야 드라마가 살거든요". PD는 녹음감독에겐 최대한 겸손하게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설명했다.문제는 녹화장이었다.
부조정실에서 내려다보는 밑의 상황은 거의 펑크가 분명하다. 당대의 톱 탤러트 윤지희는 한치도 물러나지 않고 자기주장을 해대더니 세트장을 나가버렸다. "펑펑 잘 우는 탤런트 데려다 놓고 찍어. 난 그렇게는 못 울어 이게어떻게 그런 장면이야". 스물일곱 나이에 국민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그녀가 출연하면 드라마는 `윤지희표 브랜드'로 히트하고 영화는 기본흥행이 보장된다. 그러나 그녀의 인기에 버금가게 소문 난 건(일반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윤지희의 고집과 성깔이다. 작품해석에서 아무에게도 자기 주장을 꺾지 않는 게 또 그녀의 브랜드다. "야 이 자식아, 지금 무슨소리 하고 있어. 적당히 슬픈 표정으로 넘어가긴. 그런 네가 올라와서 연출해 자식아". 와중에 죽어나는 건 AD다.
방송국 AD들중엔 귀신잡는 AD로 꼽히는엘리트 강현표지만 지금 경우에 PD는 위에서 여주인공 못잡는다고 피발악을 쳐대고 여주인공은 그렇게는 못 하겠다고 분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녹화중에 일어난 이 사태때문에 카메라맨들 씩씩거리는 소리가 귀따갑다. "거, 대충 가지 제가 언제부터 명PD라고...". 안그래도 옹고집으로 소문난카메라 감독은 여차하면 카메라팀 다 데리고 철수 할 판이다.
그녀의 상대역으로 녹화중인 다른 텔러트들은카메라감독가 반대의 욕을 하며 열받아있다. "쟤는 위도 없고 아래도 없어. 울어야 되면 울어야지, 지가 왜 건방지게 지랄이야". 그러나 윤지희 고집을 누구보다 더 잘 아는 선배 탤런트들이다. 아무도 분장실에 가서 말리려는 사람은 없다.
오늘 녹화가 펑크나면 이드라마는 대책이 없다.
녹화장 스케들도 배우들 스케줄도 다시 뺄 수가 없다. 어디서 이 사태를 들었는지 제작 1국장과 방송담당기자 몇명이우르르 녹화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