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애욕의 소용돌이 (44)

기사입력 1996년 07월 26일 16시 54분


청죽생은 드디어 별종의 아귀에게 호기심을 나타낸다.

"너는 보통내기가 아니구나. 어떻게 일심부에 몰래 잠입할 수 있었단 말이냐?"

아귀는 별거 아니라는 듯 실소를 흘렸다.

"나는 남다른 취미가 있소. 그건 매우 놀라운 기술을 필요로 하오. 그러므로 그 방면에 연구와 노력을 경주한 덕이오."

아귀의 말대로다. 남녀의 방사(房事)를 염탐하려면 소리를 절대 내지 말아야 한다.

숨소리조차 숨겨야 하고 행동은 매우 은밀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인내심도 중요하다. 숨어 있는 자세 그대로 끈질기게 견뎌야 하는 것이다.

때로는 당사자들에게 들켜서 곤욕을 치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러므로 달아나는 몸놀림도 신속해야 하는 법. 자연 아귀의 경공술은 발달돼 있다. 청죽생이 물었다. "어떤 취미냐?"

"당신도 관심이 있소?"

"일심부에는 적지않은 고수들이 암암리에 경비를 서고 있다. 그들의 이목을 피할 수 있는 재간이라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구나. 솔직히 난 흥미를 느끼고 있다."

아귀가 빙그레 웃었다. 아직도 어린티가 묻어나는 천진한 웃음이다. 하지만 그의 말투는 웃음과 전혀 상반된다.

"원한다면 함께 즐길 수도 있을거요. 숨어서 보는 재미는 직접 여자와 접촉하는 것과는 또다른 재미가 있소."

청죽생은 아연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급기야는 추월야접이 해명한다.

"그는 본래 병장기를 수집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죠. 인생의 목표를 동방산장의 신검과 무적도 사원의 칼을 수중에 넣은 것으로 삼고 있죠."

아귀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건 맞소, 하지만 진작부터 내 목표는 수정되었소."

"바뀌었단 말이냐?"

"난 일심부의 모용추를 제압하여 그녀의 옷을 홀딱 벗기고 온갖 잔인한 수모를 안겨주다가 죽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소."

아귀의 음성은 어떤 원한으로 뭉쳐있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소름이 오싹 끼치도록 만들었다.

청죽생은 다시 아귀를 자세히 바라본다. 아직 어린아이가 이토록 비정한 생각을 품고 있다는 것이 놀랍기 때문이다.

추월야접이 속삭이듯 일러 줬다.

"그의 부친이 모용추에게 죽음을 당했다는 군요."

청죽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은 여전히 아귀의 얼굴에 머무르고 있었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

아귀는 도리질을 한다.

"모르오. 하지만 그녀와의 관계로 미뤄 나와 비슷한 처지가 아닐까 생각되는 데…. 그렇소?"

청죽생은 다소 싸늘하게 소리친다.

"난 일심부의 총관이다."

아귀는 흠칫 놀라며 추월야접을 바라본다. 고개를 끄덕이는 추월야접.

"그의 신분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