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 소설] LOVE LOVE LOVE.......이규형(49)
기사입력 1996년 07월 25일 14시 34분
==== 아름답고 따스한 사랑(11) =====. "펄프픽션 영화 보셨지요? 존 트래볼타가 주인공으로 꽁지머리를 하고 나오잖아요. 두목의 정부랑 데이트하는데 그 여자가 `클'여사 헤어스타일이에요.
그런데 존 트래볼타는 화장실에서 죽고 여자는 코카인이가득차서 코피 흘리고 뻗고, 그거 얼마나 비참해요. 그래서 빨리 바뀌야겠다고 결론은 내렸는데 생각이 안났어요". 그는 황당했다. 그럼 단순히 나 때문에 머리를 바꾸었단 말인가? 내가 비참하게 될까봐 금빛염색을 해버리는 여자를 우리는 또라이라고 밖엔 부를 수 없지 않은가. "그런데 존경하는 역사 선생님, 애들한테 늘 그랬다면서도. 수업시간에 나는 따뜻한 여자를 좋아한다고". "예, 그건 내가 이상으로 생각하는...". "그래서 생각해 봤어요. 이왕 바꾸려면 따뜻하게 바꾸자고. 아무리생각해봐도 까만색은 따뜻한 색이 아니에요.
상대방은 날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일단 따뜻한 색깔로 물들이자, 그래서 생각한 게 바로 이금빛이에요. 그런데 보시니깐 어때요. 나 또라이같죠?". 그는 얼어붙듯 놀라 변명했다. "아닙니다. 무슨 소릴! 멕라이언 보다 365배쯤 잘 어울립니다" 또라이는 커녕 이제 그는 작은 감동을 느낀다.
날 만나기위해 나의 따뜻한이상형 여자에 맞추기위해 머리색깔을 바꿀 정도로 용기있는 이 여자에게. "배고프지 않았습니까? 우리 식당을 찾아서 해장국이라도 먹죠". 여름바다는 일찌감치 환해지고 벌써 새벽운동을 나온 부산광역시 남구 사람들로 가득 메워지고 있었다. 새벽바다로 좋고 모래사장도 좋지만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힐끔힐끔 엿보인다는 것은 역시 기분 나쁘다. 그녀는 너덜너덜 속살이 드러나는 청바지에다 어깨가 드러나는 빨강라운드셔츠 그리고 금빛머리다. 가출해서 바닷가에 빌빌거리는 불량소녀를 어떤 건달이 백사장에 앉아 꼬시고 있는 것같은 풍경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그래요 해장국도 먹을 수 있고 커피도 마실 수 있는 곳으로 가요". "해장국과 커피...그런데가 있습니까?". "저기 뒤에 서있는 건물들이 전부 그런 가게들로 꽉 찼어요. 1층부터8층까지 밤새 맥주파는 영업을 하니깐 불법장사이긴 하지만". 식사뒤에 커피를 하면서 그는 고민에 휩싸였다. 이제 슬슬 잠자리를보러 갈때가 아닌가. 아까부터 그런 소리를 하고 싶었지만 목구멍이 차갑게 얼어붙어 말이 나오질 않는다. 이젠 자러 갑시다,라고 말이다. 그는 목구멍이 풀리도록 벌써 두잔째 뜨거운 커피를 연신 목줄기에 흘려넣고 있다. 그녀는 8층에서 보는 바닷가 사람들의 모습이 재미있는지창가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다. "저기 한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그는 창가를 보다 돌아보는 그녀에게 용기를 내어 결정적인 멘트를던졌다. "졸립지 않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