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 소설] LOVE LOVE LOVE.......이규형(45)
기사입력 1996년 07월 21일 16시 48분
++++++ 아름답고 따스한 사랑(7) +++++. 서울역에서 열차가 떠날 때 머리가 핑돌았다. 기차바퀴가 레일에 닿아 만들어낸는 굉음에 따라 가슴 속에서도 덜컹덜컹 소리가 날 정도다. 그녀가 기차 시간에 못 맞추어 온 것이다. 그러나 잠시 후, 기차표가 새마을호가 아니라 통일호라서 안왔다는 생각이 들자 마구 자신이 한심스러워졌다. 모처럼 여자가 제의한 기차여행, 그것도 첫 데이트를 새마을호로 못모시는 남자, 거기에 더해 지난번엔 이유야 어쨌든 호텔 커피숍에서 바람을 맞혔다. 멕 라이언은 이런저런 걸 생각하며 오늘 그의 옆 좌석에 오지 않은것일게다. 영등포역에서 내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혼자서 이 기차를 타고부산까지 갈 생각을 하니 아찔하다.
거기에 더해 부산에 내리면 새벽,그 시간에 뭘 할것이며 올때 역시 청승맞게 혼자일거라 생각하니 어깨가추욱 처졌다. 다음역에서 내리자. 정말 사랑이 안풀린다. 안풀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눈이 포옥 째진 30대 남자가 그의 옆자리에 불쑥 앉았다.아까부터 옆에서 주간지를 읽으며 호시탐탐 자리를 보던 입석손님이다. "여기 자리 있어요. 아저씨". 그는 엉걸결에 사내를 밀었다. "엥 뭐야, 무슨 자리?". 그는 시비걸듯 물어대는 사내의 고함에 좌석권 2장을 내밀었다. 만약 이 자리나마 빼앗긴다면 최악의 사태가 된다. "올때까지 좀 앉아갑시다. 자리 닳는 것도 아니고". 정말 이럴때 백번 다 양보하고 살아온게 나 `인간 정동표'다. 빈자리가 아니라 내 자리라도 다 내주고 부산까지 입석으로 갈 용의가 있다.그러나 지금은 안된다.
만약(거의 확률이 없지만) 그녀가 다음역에서탄다면? 그리고 난 일어서서 그녀에게 자리를 양보하게 되고... 하지만 이 사내가 그때 만약 잠이 든다면(아니면 잠들어 못일어나는체한다며)영락없이 그녀는 이 눈찢어진 사내와 같이 가고 그는 어정쩡하게 서서 악몽의 경부선을 체험하는 거다. "아저씨 안됩니다. 금방 올건데...". 사내는 입을 씰록거리며 일어섰다. 아까 서울역부터 이 자리가 비어있었다는 걸 아는 모양이었다. 그러니 강력하게 엉덩이를 힘차게 파고들어 왔을거고. 일단 자리시비를 하고 나니까 이 자리가 얼마나 귀한 곳인가를 알게되고 다음역에서 내린다는 생각도 싹 없어졌다. 새로운 희망이 생기는것이다. 그녀의 성격상 남에게 인상적으로 보이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스타일인것 같다.
그렇다면 오번 등장도 인상을 강하게 주기 위해 대전쯤에서 올라타는 것 아닐까? 말하자면 그녀는 이미 다른 기차편으로 대전에서 쏘다니다간 시간 맞춰 대전 플랫폼에서 이 열차를 기다리고 있을지도모른다. 와우!. 대전역에서도 그녀는 타지 않았다. 그는 기가 팍 죽었다. 눈 째진사내가 혀를 낼름거리며 물었다. "친구 안옵니까? 좀 앉읍시다". 인간 정동표는 이순간 안면을 깔기로했다. 만약 대구정도에서 그녀가 타다면? 그렇게 생각하자. 목소리에 바짝 힘이 들어간다. "아, 금방 온다니깐요!". 그는 또한번 `금방'부분에 악센트를 넣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