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애욕의 소용돌이 (37) ♣

기사입력 1996년 07월 19일 17시 37분


남궁도는 석부용을 지그시 내려다 보았다. 알몸의
여자는 수치심 따위를 떠올릴 만큼 한가하지 못하다.

그녀는 실명(失明)의 고통속에서 상심의 절규를 토
해내고 있을 뿐.

그녀는 죽어가고 있었다.

남궁도는 즉시 자신의 장삼을 벗어 석부용의 알몸을 가려주었다.
그의 심정을 알고 있는지 방일비가 뇌까렸다.

"일심부의 속셈을 알기 위해 방치 했었소. 당금 무
림에서 가장 두려운 문파가 바로 그곳 일심부요."

추월야접도 거들었다.

"황금사원의 황보공주를 제압할 정도라면 인정해야 합니다.
묵기량은 다소 퉁명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언제까지 여기서 서성일거요. 난 그들이 두렵지 않으니 어서 갑시다."

남궁도가 송곳같이 예리한 질책을 했다.

"난 기다렸소."

"무었을 기다린거요?"

"황보고주는 모용추의 생사탈혼침(生死脫魂針)에 격중되어 운명을 달리한
것으로 믿고 공주의 시신을 양지바른 곳으로 모시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소."

만일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실로 충직한 부하이다.
세상의 인심이란 언제나 생전(生前)과는 다른 법이다.
주인을 떠나면 주종(主從)의 관계는 당연히 사라진다.

그렇지만 끝까지 신의를 지키는 묵리량 같은 의리가 존재하기도 한다.

방일비가 신음을 토해냈다.

"귀문의 암기가 출현하다니…허…."

중무련의 천도서생은 몹시 걱정스런 태도였다.

추월야접이 묻는다.

"그럼 오용추가 귀문(鬼門)의 문하 입니까?"

묵기량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생사탈혼침을 사용한다고 해서 반드시
귀문의 제자라고는 단정짓지 못하오."

방일비는 침통한 표정이었다.

"귀문이 다시 등장한다는 소문은 듣지 못했으나 일
심부가 연관되어 있다면 그건 단순한 소문 따위는 아닐거야."

추월야접이 뾰족한 외침을 토해냈다.

"맞아요. 어쩌면 일심부와 귀문은 …?"

남궁도가 앞장서서 걸어 나갔다.

"당장 낙양표국으로 갑시다. 묵양대인을 만나서
담판을 지어야 할거같소."

그는 일심부에 감금되어 있는 황보백령의 안위가 궁금했던 것이다.

묵기량이 빙긋 의미있게 웃었다. "황보공주도
구원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남궁도가 문득 걸음을 멈추며 묵기량을 바라보았다.
두명의 젊고 영준한 고수들의 시선이 허공에서 뒤엉켰다.
벽천무상검 남궁도가 나직하게 말했다.

"난 일심부주에게 석소저의 일을 추궁하러 가는거요."

"이유는 어쨌든 좋소."

그들은 서둘렀다.

남아있던 천도서생은 이제 장님으로 변해버린 석부용을
보살피고 있었다.

햇살은 그녀의 한 동공을 유난히 밝게 비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