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검무정] <제18화> 애욕의 소용돌이(34)
기사입력 1996년 07월 16일 18시 20분
문득 석부용이 입을 열었다.
"물론 나는 당신이 나를 죽일거라는 것을 알아요. 하지만 나는 언제나 내가 원하는 사람들과 잠을 잤어요. 혈마사주 묵기량의 명성은 흠모의 대상이 아니었으나 한 번쯤 품어 보고 싶은 대상이었다면 믿어 주시겠어요?"
염정선라 석부용이 아니면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소리다.
묵기량은 회피하지 않는다.
"나와 정사를 갖고 싶다는건가?"
"맞아요. 기왕에 죽는다면…. 난 사내를 느끼면서 눈을 감고》. 그녀는 애원하고 있었다.
"당신이라면 난 후회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난 미남을 좋아하고 거친 사람은 더 좋죠. 당신은 그 두 가지를 모두 겸비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제발》내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세요."
석부용은 애원하 듯 중얼거렸다. 그녀의 나신이 묵기량의 동공에서 파랑쳤다.
여인이 다시 유혹한다.
"본래 새벽의 정사(情事)는 더 농염하고 쾌감도 큰 법이죠."
묵기량이 그녀의 코앞으로 다가들었다.
"나는 본래 여자의 소원을 외면하지 못하지."
그는 석부용의 입술에 자신의 검지를 살짝 갖다 댔다가 서서히 턱으로, 목덜미로 틴� 내린다.
여인의 교구가 바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어떤 사내라도 넘어갈 수밖에 없도록 자극적이다.
석부용은 묵기량의 품으로 뛰어 들었다.
"묵대협》."
그녀는 눈을 감고 묵기량을 끌어 안으려다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외눈을 번쩍 떴다.
칼.
시퍼런 칼날의 끝이 석부용의 심장을 겨누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미 그녀의 가슴 아래는 한 줄기 선홍빛 핏물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내 소원을 들어 준다고 하지 않았나요?"
묵기량은 냉막한 시선을 던졌다.
"물론 그랬다."
"그런데》 왜?"
"나는 단 칼에 너를 죽일 생각이 아니다. 단지 어느 부위든 베어 버리고 너의 목적을 들어 주려는 것이다. 그러고도 절대의 쾌감을 네가 느끼든 아니든 난 상관없다. 나의 취미와 너의 취미가 동일하게 이뤄지는 것이 중요하다."
과연 그는 청부자객다웠고 마치 짐승을 도살(屠殺)하는 백정과도 같다. 묵기량은 소름끼치는 미소를 머금으며 수중의 칼을 천천히 추켜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