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형 옴니버스소설] LOVE LOVE LOVE
기사입력 1996년 07월 16일 14시 57분
** 아름답고 따스한 사랑 (2) "이 녀석이 선생한테 말투가 그게 뭐야?"
"미안! 좋은 애인 하나 있는데 만나실래요, 안 만나실래요?"
여드름이 득실득실한 중학생으로 덩치가 제법 있는 녀석은 연방 실실 웃는다.
"누구냐? 너희 누나?"
"이종사촌이요. 친척만 아니라면 내가 목숨걸고 할텐데요."
"예뻐?"
"죽이지요."
"그리고? 성격은?"
"죽이지요. 착하고 인정있고》."
아름답고 따뜻한 여자. 그는 흥분했다.
"빨리 결정하세요. 오늘 연락 할테니까요. 사촌 누나한테."
쉬는 시간이 되어 교실에서 애들이 나오다가 복도에 서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는 몰려들었다. 선생과 제자 사이의 이런 얘기는 은밀하게 그리고 잽싸게 이루어져야 하는 법.
그는 앞에 있는 기특한 제자놈에게 눈을 찡긋하는 걸로 O.K 신호를 보낸뒤 교무실로 내려왔다.
그다음 토요일, 그는 될 수 있으면 점잖은 자세를 지키려 집에서 한껏 연습했다. 선생님 아닌가. 동생의 스승을 만나러 오는 여인이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상대 남자가 양아치같은 스타일이라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 그의 모습은 어떤가? 꽁지머리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그는 약간 길다란 뒷머리를 고무줄로 틀어 묶고 다닌다. 뭐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머리 깎는데 게으르고 별로 헤어스타일에 신경쓰지 않는 그로썬 아주 적격의 머리형이었다.
외국잡지에서 보니 어떤 녀석이 머리를 질끈 뒤로 묶어 젖혔는데 개성있을 뿐만 아니라, 1년은 머리를 깎으러 안가고도 버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런 머리를 하고 T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은 채 등교한다.
다행히 선생들 개개인의 프라이비트한 생활을 존중하는 젊은 교장의 사립학교라 그의 꽁지머리스타일은 그런대로 묵인되어 넘어가고 있다.
`요즘 애들은 그러려니》.' 교무실의 나이든 선생들도 지레 신세대 운운하며 참고 있는거다.
반대로 이 꽁지머리는 학생들에겐 인기폭발. 그의 별명은 `꽁지꽁지'로 통하며 이 녀석들이 그의 면전에서도 별명을 불러대고 있는 지경이다.
집을 나오려다가 아무래도 뭔가 어울리질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정말 간만에 감색 더블양복을 입어 봤는데 영 뭔가 석연치 않았다. 두손으로 머리 양쪽을 가려봤다. 그렇지, 역시 문제는 머리스타일에 있었다.
꽁지머리와 양복의 매치가 어색한 거다. 그는 T셔츠로 갈아입을까 생각하다가 오늘은 왠지 선생의 격식을 차리는 게 좋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며칠 전 여드름 투성이의 제자로부터 제의를 받은 이래, 그는 내심 고민고민하고 있었다. 어제 점심시간에 한번 더 확인한 바에 의하면 녀석의 사촌누나라는 그녀는 퍼펙트하다는 감이 왔다.
아름답고 따스한 여자가 틀림없으며 거기에 더해, 그녀는 그를 무지무지 좋아한다는 거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