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애욕의 소용돌이(33)
기사입력 1996년 07월 15일 14시 03분
**난 혈마사와 은원이 없소 혼비백산하는 석부용.
그녀의 놀란 눈에 가득 차오르는 것은 붉은 안개(血霧)의 덩어리였다. 점차 그 안개가 담장아래 웅크리고 있는 한 명의 혈의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몸을 일으키자 호리호리한 체구에 귀공자풍의 사내가 거기 그렇게 서있었다.
혈마사의 주인 묵기량.
평상시에 이런 사내를 만났다면 석부용의 색정(色情)이 발동 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녀는 매우 당황해 하고 있었다.
"그대는...?"
"묵.기.량."
혈마사주는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띄엄띄엄 내윽었다. 염정선라 석부용은 가슴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묵기량은 느리게 움직였다. 석부용은 반대로 매우 급박한 심정이다. 태산의 그늘은 늦게 드리워지는 법이라던가.
묵기량의 몸짓에 석부용은 형용할 수 없는 중압갑을 느끼며 바싹 긴장한다.
"귀하는 누구의 청부를 받았소?"
"아무에게도 받지 않았다."
염정선라 석부용은 입술이 바싹 타들어갔다.
"그렇다면 내 앞을 가로막을 필요는 없겠군요."
"그렇지는 않다."
"원하는 게 있소?"
묵기량은 자신의 용모와는 전혀 다른 냉정함으로 그녀를 쏘아본다. 그 눈빛은 참으로 공포스럽다.
"널 죽인다."
석부용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
"난 혈마사와 은원이 없소."
"우리 자객들이 금품을 받고 청부에 의해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특기이고 그저 심심풀이로 사람을 해치는 것은 취미이지."
사람을 해치는 취미는 사실 취미 치고는 특별하다. 석부용의 취미 역시 남다른 점이 있다면 사내들과 뜨거운 밤을 보내는 것이다.
그녀는 이제 마지막으로 자신의 취미를 가지고 도박을 시도한다.
"나는 특기와 취미가 별다르니 당신은 시험해볼 생각이 있나요?"
묵기량이 대꾸를 하기도 전에 염정선라 석부용은 걸치고 있던 옷을 훌훌 벗어던진다.
새벽 햇살에 비치는 석부용의 몸매는 눈부시다.
그녀의 알몸은 대리석처럼 미끈하였다. 그녀는 수줍은 듯 눈을 감았다. 외눈이 감기자 이미 그녀는 애꾸가 아니었다.
도발적인 자세에서 풍기는 유혹은 실로 끔찍할 정도였다.
묵기량은 이순간 무엇을 생각할까?
자신의 육체를 무기 삼는 염정선라 석부용을 가만히 응시하던 젊은 청부자객은 드디어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훌륭한 몸이군."
묵기량은 중얼거리며 그녀의 몸으로 손을 내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