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 기차여행맛 도시락맛
기사입력 1996년 07월 12일 14시 56분
`시골영감 처음 타는 기차놀이에~.' 갑자기 옛날에 들었던 `서울구경'이라는 흥겨운 노래 한구절이 생각난다.
웬 노래냐 하면 바로 기차 때문이다.
지난달 29일부터 11일 후쿠이를 마지막으로 무려 2주 동안 7개도시를 거친 긴 원정을 끝냈다. 정말 원없이 돌아다녔다.
멀리 남쪽의 규슈나 오키나와, 북쪽의 삿포로에 갈 때는 비행기를 이용하지만 나머지 도시는 신칸센을 비롯한 철도가 전국 곳곳에 거미줄처럼 뻗어있어 기차를 주로 이용한다. 원정경기가 있는 도쿄(요미우리 야쿠르트)나 오사카(한신) 히로시마 등은 신칸센으로만 연결돼 있고, 아예 비행기 노선이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한국에서도 느끼던 것이었지만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비행기보다 기차가 훨씬 편리하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선수단 전체가 구단버스로 이동하거나 가끔 비행기를 타곤 했지 기차를 탄 적은 거의 없었다. 기차여행은 낭만이 있다고 했는데 일본의 신칸센은 시속 200㎞가 넘어 바깥 경치를 자세히 볼 틈은 없다. 신칸센은 노조미, 히카리, 고다마로 등급이 나뉘어지고, 좌석도 지정석과 자유석이 있는데 요금은 별 차이가 없다. 신칸센이 아닌 JR특급을 타본 적이 있는데 기차가 어느 역에 도착하자 갑자기 사람들이 일어나서 좌석을 반대방향으로 돌리는게 아닌가. 기차가 거기서부터 거꾸로 가기 때문이란다.
재빨리 좌석을 돌려보니 졸지에 맨 뒷좌석이 됐다.
일본에서의 기차여행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오벤토, 즉 도시락 `까먹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 기차안에서 찐 달걀이나 김밥 먹는 재미와 마찬가지다.
도시락을 먹고 맥주로 입가심을 한 뒤 나머지 시간에는 책을 보거나 잠을 청한다. 가장 오래 걸리는 히로시마가 2시간30분이면 OK다.
한국에서도 고속전철이 생기면 이렇게 될 것이지만 시골영감이 기차삯을 에누리하려는 광경을 보고 웃는 노래가 그때도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아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