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검무정] <제18화> 애욕의 소용돌이(29)
기사입력 1996년 07월 10일 15시 14분
**"이소야님… 어서 달아… 나요." "이게 무슨 짓인가?" 이효봉이 대경하여 소리치자 금란의 음성이 희미하게 토해졌다.
"이… 소야님… 어서 달아나… 요."
그는 언제나 남이 하리라고 생각하는 일을 쉽게 하지 않는다. 지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소야는 핏물을 떨구며 그냥 묵묵히 바라볼 뿐이다.
이효봉은 금란을 밀치려 했지만 그녀는 찰거머리와도 같다. 아니, 이미 죽기를 각오한 그녀는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어서 놔!"
고함을 질러 보지만 금란은 물러날 기세가 아니다. 그녀는 족쇄마냥 더욱 단단하게 이효봉의 허리에 달라 붙었다.
이효봉은 그녀를 떼어 놓으려 애쓰지만 워낙 금란이 끈덕지다.
이러한 광경을 처음 목격하는 사람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 사내는 피눈물만 떨구고 있고 노인과 젊은 여자는 서로 부둥켜 안은 채 땅바닥을 맴돌고 있지 않은가.
동방산장의 이효봉은 다급했다.
금란의 저지로 인해서 이소야는 도주할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이효봉은 즉시 단전으로부터 공력을 끌어 올렸다.
"물러나라. 자네도 위험해!"
금란은 이미 눈빛이 흐려져 있었다.
"각오 했어…요."
이효봉은 금란의 방어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쌍장을 이소야에게 휘둘렀다.
굉음이 장심에서 발출(發出)되었다.
노도(怒濤)와 같은 기류가 이소야의 전신으로 휘몰아쳐 갔다.
피할 생각은 애초부터 없는 듯 이소야는 거기 그렇게 가슴으로 이장주의 장력(掌力)을 고스란히 맞이하고 있었다.
쾅!
이소야의 몸이 일순간에 튕겨져 올랐다. 그의 신형은 폭풍속에 휘말린 가랑잎이었다. 무려 이 장을 떠올랐다가 떨어져 사정없이 굴렀다.
칠공(七孔)에서 피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이소야는 이미 의식을 잃은 듯 그저 장력의 폭풍속에 휘감겨 떼굴떼굴 구를 뿐이었다.
이효봉의 섬뜩한 눈빛에서 일말의 동요가 드러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이소야의 신형이 마구 벼랑 끝으로 굴러가고 있는게 아닌가. 이효봉은 재빨리 신형을 날렸다. 허리를 부여잡고 있는 금란의 무게가 그의 경공을 방해하고 있었다.
"아!"
이효봉이 전력을 다해 손을 뻗었지만 안타깝게도 이소야의 신형은 벼랑 아래로 미끄러져 내리고 있었다.
추락(墜落)이었다.
아득한 절벽 아래로 한 없이 떨어져 내리는 이소야. 동방산장의 장주 이효봉은 그 순간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이… 이… "
외침은 입안에서 맴돌 뿐 밖으로 터져 나오지 않았다. 황량한 바람이 불었다. 그제서야 금란의 몸이 허무러져 내렸다.
벼랑 끝에 선 이장주의 모습은 유난히 처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