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애욕의 소용돌이 (28)

기사입력 1996년 07월 09일 15시 07분


금란은 피가 철철 흘러내리는 젖가슴을 내려다 보았다.



언제고 그 가슴을 베어 버리고 말겠다고 생각한 그녀였지만 고통은
참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금란의 안면 근육은 참혹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이장주는 몹시 당혹스러운 모양이었다. 노안(老顔)에는 의혹이 가득하다.



"자네가…왜?"



금란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지만 그녀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웃음이다.
차라리 울상에 가깝다.

"이소야님은…안됩…니다."



동방산장의 이효봉은 재빨리 그녀의 혈도를 짚어 지혈(止血)에 들어가려 했으나
상처 부위가 묘한자리라 주저할 수밖에 없다.

"자네가 내 생명을 구한 것은 인정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가문의 시비에
뛰어드는 건 용납할 수 없네."

금란은 숨을 헐떡였다.



"천…녀가 원하는건 단지 이…소야님을 용서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효봉의 고개가 고집스럽게 틀어졌다.



"그럴 수는 없지."



금란은 흥건히 피가 쏟아지는 젖가슴을 움켜쥐며 입술을 달삭였다.



"이…소야님은 충…분한 고통을 격었습…니다."



이효봉은 격앙된 표정이었다.



"지금 고통이라고 말했나? 어떤게 진정한 아픔인지 사람들은 모른다.
뼈가 으스러지고, 머리통이 깨지고, 눈알이 튀어나오는 육신의 고통은
차라리 즐거운 편이라고나 할까? 한꺼번에 희망이 사라지고, 꿈이 무너지고,
행복이 날아가고, 영혼이 산산조각난 그 처절한 절망의 고통을 누가


짐작하는가?"

이소야는 여전히 석탑마냥 굳어있다. 다만 이효봉의 절규가 토해질 때마다
참을 수 없는 눈물을 뿌릴 뿐이다.

아…그것은 혈루(血淚).



대황제일검 이소야는 피눈물을 흘리며 넋을 잃고 있는 것이다.



금란은 마지막 발악을 하듯 소리친다.



"장주…님을 구한 것은…오로지 이소야님을 위…해서…였어요.
그 분은…그 분은...절대 죽어서는 안되…요."

이효봉의 눈가에 깔려있는 잔주름이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자네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군."



이소야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금란, 난 아직도 너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아마 그 이름은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이제 비켜다오."

금란의 신형이 부들부들 떨었다.



사문의 명으로 숱한 사내들을 섭렵했고 그중에서 이소야도 존재했었다.
당시의 그는 너무도 잘난 사내였었다.

그의 웃음을 다시 보고 싶었다. 참으로 천진했던 미소(微笑). 황홀하기까지 했던
그의 미소를 볼 수 있다면 그 어떤 대가도 아깝지 않으리라.

금란이 갑작스럽게 장주 이효봉의 가슴으로 뛰어 들었다. 중상을 당하고
사경(死境)을 헤매는 그녀 답지 않은 반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