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검무정] <제18화>애욕의 소용돌이(24)

기사입력 1996년 07월 04일 17시 58분



인기척이었다.

영빈관의 입구에서 얼음장 처럼 차가운 기척이 느껴졌던 것이다. 이소야는 내공을 단전으로 끌어 올리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 하였다.

아비라는 이소야의 경직된 태도를 즉시 간파한다. "경계할 필요 없어요. 그는 내 경호원이니까."

예리한 회색빛 동공 하나가 문틈으로 스쳐갔다. 오싹한 한기가 이소야의 전신을 훑어 내렸다.

'바로 그 자다!'

이소야는 자신의 공격에도 끄떡않고 죽음의 손을 뻗어오던 회색의 강문호를 떠올리며 새삼 몸서리쳤다.
아비라는 장난기가 발동한 듯 물었다.

"이소야는 대황제일검이라 불려지니 어때요? 나의 경호원 실혼령(失魂靈)과 비무를 해보는게?"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지니는 당연한 호승심(好勝心)과 명예욕(名譽慾).

이소야는 그와 관계없는 충동을 느낀다. 실로 수년만에 맛보는 기분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해보리다."

왕녀 아비라는 설마 이소야가 이렇게 순순히 대답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녀는 놀라며 재차 묻는다. "내 경호원은 금강불괴에 가까워요. 그래도 자신 있나요?"

"승부는 언제나 예측을 못하지요." "좋아요. 그럼 당장이라도 시작 하지요."

이소야가 담담히 웃었다. "오늘은 비무를 하기에 적당하지 않소이다. 우선은 두 분의 대화가 성사된 후로 미룹시다."

아비라 왕녀는 이소야의 말을 이해한다. "그렇군요. 이목(耳目)을 피해 찾아오신 연유가 있겠지요. 단순한 인사치레를 하기에는
너무 먼 거리이므로."

이소야가 뒤로 물러났다.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그는 무현왕자와 아비라왕녀가 밀담을 나눌 수 있도록 배려하고는 밖으로 걸어 나왔다.

막 문가를 나서는데 이번에도 기분 나쁜 회색동공이 어둠속에서 작렬하고 있었다.
이소야는 이목을 집중시키며 상대방이 숨어 있는 장소를 은밀히 탐지 하였다. 놀랍게도 전혀 노출이 되지 않았다.

'강호는 역시 두려울 정도로 기인(奇人)이 많다'

이소야는 영빈관이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지난 며칠 암기해 두었던 해동검결의 구절을 떠올렸다.

그러나 도무지 난해하여 단 한마디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불현 듯 부친 이효봉의 떠올랐다.

'아버님이시라면 ….'
동방산장의 장주 이효봉의 심오한 학문과 무예에 대한 박학다식함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여겨졌다.
바로 이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