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건 3단 ●서봉수 9단 본선 토너먼트 제4국
기사입력 1996년 07월 04일 16시 44분
제3보(15~30)=백 16은 상용수법. 익히 밟아본 길이니 피차 망설일 이유가 없다는 듯 흑 23까지 빠르게 이어진다. 백 24는 중앙지향의 한수. 보통은 의 백 1, 3인데 이때 흑 A의 봉쇄가 싫어 실전 백 24를 택했는지도 모른다.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도 있어야지. 4분쯤인가 물끄러미 우하쪽을 바라보다가 총총히 좌상귀로 달려가 철 �, 붙여간 흑 25도 흔히 볼 수 있는 상용수법. 그런데 백 28, 30이 좀 이상했다. 기세의 연타이기는 하지만 이 수로는 의 백 1로 몰고 3에 꽉 잇는 쪽이 낫지 않았을까. 이 그림이 애초에 중앙을 지향한 백 24의 의지와도 일맥상통한다. 수순중 흑 6으로 의 흑 1에 잇는 것은 좋지 않다. 백 2면 흑이 미생마로 쫓겨, 움직일 때마다 주변 백진에 살아 붙을 테니 흑마의 생사를 떠나 좋을리가 없다. 빼꼼히 열린 대국실 문틈으로 반팔 티셔츠를 입고 반면을 지그시 내려다보는 서 9단의 옆얼굴이 보인다. 특유의 무덤덤한 표정. 마주앉은 청바지차림의 양 3단도 잔뜩 허리를 굽힌 채 바둑판으로 빠져들고 있다. 국지전으로 잘게 잘게 쪼개지는 이런 바둑은 어느 한쪽에서 뚜렷한 실수가 나오지 않는 이상 끝이 멀다. 두 기사 모두 구두끈을 단단히 조여매고 먼 길을 떠날 채비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