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가 쓰는 ML 메시지]

기사입력 1996년 07월 02일 21시 30분

**내년엔 완봉투로 '생일파티 답례' 지난달 29일 콜로라도주 에서 23번째 생일을 맞았다. 조금은 우울한 생일이었다. 독감에다 연속 등판으로 지친 가운데 마운드에 올랐다가 이닝 동안 4실점을 하고 내려왔기 때문이다. 내 뒤를 이은 투수가 3구와 안타로 3점을 보태기는 했지만 내가 내보낸 주자들이었으니 내 책임이었다. 사실 6월29일은 음력 생일 날짜다. 그런데 음력을 세지 않는 미국에 오고나니 자연스럽게 내 생일은 6월29일이 되고 말았다. 나는 미국에서 맞은 3번의 생일을 모두 원정경기에서 맞았다. 미국에 온 첫 해 소속을 뛰던 94년의 생일은 참으로 잊기 어려운 감동적인 날이었다. 당시 우리 팀은 엘파소에 원정 중이었는데 유난히 경기가 늦게 끝난 밤 12시가 다돼서 경기장을 나서는데 나를 기다리는 한국 유학생들이 있었다. 처음 보는 분들이었지만 한국분들이라 그들이 있는 대로 따라갔더니 대학의 강당 같은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깜깜하던 실내에 불이 갑지기 켜지자 온갖 풍선들과 나를 환영하고 생일을 축하한다는 문구들이 적힌 생일 케이크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눈물이 왈칵 솟을 정도로 고맙고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작년 생일날에는 알바커키 소속으로 에서 경기를 치르고 있었다. 화려하기만 한 도시 에서 외롭게 생일을 맞을 준비를 하던 나는 에이전트인 김철원형 부부가 사전 연락도 없이 찾아와 생일에 걸맞는 저녁을 사주어 기쁘게 보냈다. 그리고 올해는 해발 1천5빅미터가 넘는 고지의 도시 에서 생일을 맞았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에서도 우리 동포들의 나에 대한 사랑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한인회 분들이 나를 위해 생일 파티를 열어 주었던 것이다. 어떻게 알았는지 그곳의 한인식당에 생일케익은 물론이고 각가지 한국음식을 차려 나의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나는 그때마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나를 감동시키는 모든 동포들이나 고국 팬들의 사랑과 애정을 느끼게 될 때마다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분들을 위해서도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투지가 솟아나곤 한다. 내년 생일에는 선발 투수로 나서서 완봉승이라도 따내 팬들에게 선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