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소설> LOVE LOVE LOVE.......이규형(26)
기사입력 1996년 06월 30일 15시 15분
//////// 서머 타임 (3) /////////. 일곱번이나 읽은 추리작가 프레드릭 포사이드의 초기 대표작이었다. 외국 바닷가에서 자기랑 똑같은 작가의 작품을 읽는 사람들 발견하는기분은 색다른 것이었다. 자신과 10m 차이를 두고 한국여인이 `전쟁의 개들'을 읽고 있다니... 호텔 룸에 들어와서도 내내 그 여자생각으로 신경이 쓰였다. 신경외과의사인 자신이 신경조절을 못하다니, 돌팔이 아닌가.
원래 다 그런거다. 남녀문제에는 항우 장사가 따로 없고 철학자고 고고학자고 학문이 통하지 않는다. 아까 미친 척하고 말을 한번 붙여보는 건데, 기회를 놓쳤다. `엇! 프레드릭 포사이드를 읽으십니까? 나도 그 작가 팬인데... 여자분치고 굉장히 하드한 작품을 보시는 군요. 어쩌구 저쩌구...' 물론아까 그녀를 지나치며 그런 생각을 안한 건 아니었다. 근데, 아무래도 쑥스러워서 관뒀다. 뭐 다른 방법으로 용스럽거나,범스러운 건 없을까를 고민하며 긴 해변을 걸었다. 그가 다시 비치 그 장소로 돌아왔을 땐 그녀는 `전쟁의 개들'을 들고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남방에 반바지를 걸친 채 밤바닷가로 나왔다.
약간은 훈기가있는 바람이 온몸을 감싸안는다.
아까 낮에 자신이 책을 읽던 야자수를 찾았다. 그리고 거기서 좌측으로 10m, 그녀가 있던 자리를 보았다. 과연 그녀는 내일도 저 자리에 있을 것인가?. 낮에 보니까 이곳 호텔앞에는 여자가 있는 술집들이 꽤 보였다. 미국은 물론 일본 술집도 보인다. 어떤 술집이라도 마시는 데 별 걱정은 없다. 최소한 괌은 미국령 이니깐. 중국스타일이건, 일본 스타일이건 영어가 통할 것이다. 술집여자들과 얘기하는 정도야 별 문제가 없고 바가지를 쓴다 해도 웃을 수 있는 주머니 여유가 있다. 자신이 바꾼 3천달러 외에도 병원 선배가 찔러준 2천달러가 있다. 사실 성격상 쇼핑을 할 것도 아니고 자신이 이 돈을 3일동안 다 쓸 수 있는 방법은 술집에서 노는데 아니면 달리 용도가 없을 것 같다. 낮까진 분명히 그렇게 생각을 했다. 오랜만에 한번 돈으로 놀아보자,선배말마따나 여자들과도 어울려 스트레스를 말끔히 해소하자고 생각했다. 한데 지금은 당기질 않는다. 서울에도 숱하게 깔린 술집인데 여기까지 와서 그런 곳에다 시간을 죽이는 게 바보스럽게 생각되는거다.
솔직히 더 정확한 이유는 낮에 `책을 읽는 여자'를 봤기 때문이다. 막연하지만 어쩌면 내일 이 해변에서 다시 만날 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그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자리잡고 있다. 그는 밤바닷가를 산책한 뒤 호텔로 돌아왔다. 일본재벌계열의 이 호텔구조는 바다가 보이는 방은 베란다에서 풀장이 내려다 보이게 되어있다. 밤늦게까지 하는 호텔 풀장 바닥엔 멋진 블루조명이 되어 있어 물결이 근사하게 아른거린다. 그는 아무 생각 없이 베란다에서 담배 한대를 피우다가 눈을 찡긋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어, 저거 누구야?. 날씬한 몸매의 여자가 풀장을 느긋하게 개구리 헤엄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낮에 보았던 보라빛의 그 수영복을 입은 여자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