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카스배 천원전> ○최규병7단 ●유창혁 9단
기사입력 1996년 06월 29일 18시 07분
제11보(112-130) = 백112. 아마도 이 수는 귀를 가장 오래도록 비워둔 비공인 세계기록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아울러 이수는 집을 만들기에 가장 능률적인, 그래서 대국초반이면 어김없이 채워지는 네귀퉁이중 하나를 무려 111수
동안이나 비워두어야 했을만큼 이 바둑이 치열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형세는 어떤가.
이미 앞서 밝힌 대로 '백의 승리가 확정적' 이라는 게 검토실 상주 기사들의 공통된 견해.
백의 의도대로 이끌린 중앙 대타협의 결과는 분명 흑의 손해였다. 흑은 그동안 줄기차게 노려왔던 상반부를 장악했지만,
그 상반부를 아낌 없이 떼어즈는 대가로 좌중앙일대를 완전봉쇄한 백이 좌하귀를 선착함으로써 중앙과 좌하귀, 우하쥐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거대한 화이트벨트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검토실은 당대 최고의 공격수로 꼽히는 유창혁 9단을 상대로, 상반부에 흘러나온 백대마를 모조리 넘겨주는 과감한 사석작전을
펼친 최규병 7단의 담대함에 잠시 경탄하는 분위기.
집계산을 해보자. 흑집은 상반부를 최대힌 부풀려 70집. 우변은 엷어서 아직 집계산이 힘들다. 백집은 가상 경계를 설정한
좌반부가 50집, 우상귀 10집(흑 '가', 백 '나'로 봐서) 그리고 날일자로 굳혀둔 우하귀를 10집만 봐주어도 이미 반면승부가
된다. 더구나 계산에 넣지 않은 하반부는 이미 백의 세력권.
흑 113. 흑으로서는 최대한 상데에게 밀착해 접근전을 펼치는 수밖에 없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삭감하는 정도로는 계산서를
맞출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전장을 가득 채웠던 매캐한 화약냄시는 조금씩 엷어지고 있다. 백 118, 120, 그리고 중앙 124. 백은 이미 '모든 싸움을
중지하고 확정된 영역의 경계선까지 물러서라'는 전군 퇴각령을 내린 눈치다.
흑 125, 127 좌하쪽 흑의 도발을 백 126, 128로 적당히 견제해두고 우하귀로 날아가 깃발을 꽂는다. 수순중 흑
125로는 '다'의 곳 3·三을 파고들수는 있지만 그렇게 되면 중앙과 우변의 상황이 달라져 흑쪽에 별 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