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소설> LOVE LOVE LOVE...........이규형(24)
기사입력 1996년 06월 28일 14시 33분
///////////// 서머타임 (1) ////////////. 그는 냉담함과 초연함을 유지하려 애썼다.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인간을 상대하는 것은 보통 괴로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의사란 직업이고 수많은 환자들은 그에게 실려오기 이전에 이미 신의 선고를 받은 뒤였다. 그는 몇 시간전 자신이 머리뼈를 절개하여 뇌를 열어놓은 이 사람에게제발 신이 다시 한번 재고해 주길 빌었다. 이미 신의 선고를 받은 삼십대 중반의 남자는 세명의 아이와 서른살밖에 안된 부인이 있었다.
그 아이들과 부인을 수술 직전에 만나야 했다는 것은 보통사람들은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이다. 이미 머릿속에 붙어있는 골프공 만한 크기의 종양을 떼어냈지만 갈길은 멀었다.
5시간에 걸친 뇌수술로 그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고 눈이피로해졌다. 환자의 악성 뇌종양은 다른 선배의사가 포기한 것이었다. 뇌 안에 단단히 달라붙은 종양은 뇌 안쪽에까지 돌덩어리처럼 박혀 있었다. 뇌를 다치지 않고 주위의 동맥들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이 종양을뜯어내는 일은 불가능해 보였었다. 그는 묵묵히 종양 조각들을 꼼꼼하게 떼내어갔다. 뇌를 다치지 않도록 온 신경을 집중하여종양의 크기를 아주 조금씩 줄여 나갔다. 자신의모든 기력을 다 쏟았다. 이 남자가 오늘 죽느냐 앞으로 30, 40년쯤 더 사느냐는 자신의 두 손에 달려있다. 그는 그런 그림들을 상상하며 끈질기게 종양을 흡입하고 절개하고 머리뼈를 가르고 경막을 찢고 뇌를 들어내어 죽음의 덩어리를 제거했던 이수술은 이제 최후의 순간을 맞고 있다. 할 수 있는 한은 다했다.
마지막 종양 덩어리를 아슬아슬하게 흡입하고 긁어냈을때 신이 마음을 바꾸었고 나을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그는 환자의 뇌를 조심스럽게 머릿속으로 넣었다. 그리고 처음대로 머리를 봉합한 뒤 비로소 큰 한숨을 토해내었다. 고도의 긴장으로 인한 피곤함이 몸 전체를 덮쳐 왔다. 수술실 밖으로 나가면 차가운 맥주를 한병 마시리라. 담배를 피우며거슈윈의 `Summer time'을 들으리라. 사흘 뒤 그는 괌으로 날아가는 비행기에서 차가운 맥주를 마시며 워크맨으로 `Summer time'을 듣고 있었다. 꿈꾸는 듯한 목소리로 자아내는 재니스 조플린 노래의 `Summer time'.사흘전 그 환자는 경과가 좋았다. 후유증은 없다. 그 엘리트 회사원은 이제 특별한 위험이 없는 한 딸의 결혼식과 아들 졸업식을 보게 될 것이다. 이럴때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마지막 귀절이 늘 떠오른다. "내가 이 서약에 충실함에 비례하여 행복과 명성이 항상 나와 함께 하기를 바라노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