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사 승무원이 만난 별난 배낭족]
기사입력 1996년 06월 24일 16시 49분
## 제6화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어물전 망신은 때깔입힌 조기가 시키고, 정육점 이미지는 병든 젖소가 망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누구나 세계화 시대를 맞아 `해외에 나가면 나는 곧 민간 외교사절'이란 거창한 다짐을 하면서 의기양양하게 김포공항 출국대를 나선다. 그러나 바다 건너 낯설고 물다른 객지에 닿으면 마음이 흔들려 "우선 편하고 보자"며, 자랑스런 한국인임을 포기하는 여행자들이 아직도 있다. 말이 안통해 그렇기도 하고, 여행 경비 절약하려는 이유도 있고, 엉뚱한 영웅심을 발휘해보자는 객기도 발동하고…. 얼마전 이스트코스트파크에서 만났던 우리 남녀 배낭족 4명은 망신살의 극치를 이뤘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는 스콜 현상이 일어났을 때 공원 화장실에 들어섰는데, 화장실 냄새와는 조금 색다른 된장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화장실서 된장찌개 끓이다 들켜 이상하다 싶어 안쪽으로 들어섰더니 세상에, 남녀 4명이 화장실 세면대를 부엌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버너에다 밥을 짓고 찌개를 끓이고 있는게 아닌가. 그들은 피부가 약간 검은 나를 사람으로 생각했는지, 당황한 목소리로 "스미마셍(죄송합니다), 스미마셍"하고 더듬거리는게 아닌가. 된장 냄새는 분명 신토불이 한국산인데, 웬 스미마셍?
그들은 계속 일본 말을 더듬거리며 계면쩍어 했으나, 배낭에 붙어있는 `2002 월드컵 코리아' 스티커까지 속일수는 없었다. 그들은 동남아로 배낭여행을 떠난 대학생들이었는데, 야영생활을 하다가 비가 오는 바람에 공중화장실에서 취사를 하게 됐노라고 해명했다. 그래도 자랑스런 한국인의 자존심이 남았는지 일본인 흉내를 낸 그들의 지극한 애국심(?)에 나는 감동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어리둥절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