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검무정] <제18화> 애욕의 소용돌이 (10)

기사입력 1996년 06월 20일 16시 08분


일심부주의 눈빛도 심상치 않게 번뜩였다.

그는 황보백령에게 뻗던 손을 멈추고 있었다.
상념에 잠긴 묵양대인, "하마터면 큰 실수를 범할뻔 했군"

그는 홀연 중얼거리며 물러선다.
어리둥절한 것은 황금사원의 황보백령이었다.
일심부주는 분명 자신을 고문하려 했었지 않은가.

스스로 물러난 이유가 궁금했다.
황보백령은 의연하게 소리쳤다.

"그렇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날 풀어주오."

일심부주가 음침한 괴소를 흘렸다.

"사매는 매우 영악하여 나로 하여금 함정에 빠지도록
유인했지만 난 넘어가지 않아."

이해하기 어려웠다. 단지 사형제간의 갈등과 번민이
존재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황보백령은 과연 놀라운 두뇌의 소유자다웠다.
그녀는 단숨에 그들 사형제간의 문제를 간파하고 있었다.

"당신은 모용추를 마음에 두고 있군요."

묵양대인은 긍정도 부정도 않는다.

"그렇게 보였나?"

"모용추는 충분히 사랑을 받을 만 한 자격이 있어요."

"맞아. 만일 그녀의 마음을 살 수만 있다면 어떤 대가를
지불해도 좋을 만큼 사매는 매력적이지."

"당신에게도 자격은 있어요."

일심부주는 흡족한 표정이었다.

"후후후. 내게 바라는 것이 있는 모양이군. 그러나 기대는 하지마."

그의 뒷말은 매우 쌀쌀하여 듣는 사람을 질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황보백령은 추호도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두 눈을 무섭게 부릅뜨고 호통을 쳤다.

"나 만이 봉활제전을 주관할 수 있소. 만일 내가 봉황곡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천하 무림은 일심부를 의심하고 또 경멸할 것이에요."

일심부주는 동요하지 않는다.

"그러한 배짱없이 어떻게 그대를 잡아올 수 있었겠는가?"

"왜국에 대한 믿음이 사람을 그토록 광포하게 만드는군요."

일심부주는 황보백령을 노려본다. 단순히 곱지않은 시선이 아니라
마치 심장을 관통해버릴 듯이 냉랭한 안광.

"너의 목숨이 내 손에 달려 있음을 전혀 모르느냐?"

"그 정도 눈치는 있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넌 두려움이 없다니. 역시 대단한 계집이다.
인정한다. 본국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이냐?"

황보백령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일심부주의 질문에 대답하기 싫다는 의도.
묵양대인은 채근하지 않는다.

황금사원의 여주인 황보백령은 이순간 매우 처량해 보인다.
눈을 감은채 입술을 깨무는 그녀의 표정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동정을
사기에 충분하다.

누가 생각이 해봤겠는가. 신비의 문파 황금사원의
주인이 이토록 초췌한 몰골로 변하게 될 줄이야.

"총관을 보낼 것이다."

일심부주는 차가운 음성만을 남겨 두고 별각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