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카스배 천원전] ○김승준 4단 ●강훈 8단
기사입력 1996년 06월 18일 17시 00분
**끝내 역전의 기회는 오지 않고… 본선 토너먼트 제2국 총보(1~148)=대국 종료시간 3시45분. 강훈 8단은 제한시간을 모두 사용하며 최선을 다했지만 끝내 역전의 기회는 오지 않는다. 아직, 파릇한 군기(軍氣)가 그대로 남아 있는 듯한 김승준 4단이 `약진 앞으로!'를 외치며 본선 1차관문을 통과했다. 얼마전 14세의 조한승 소년이 지나간 길이다. 강 8단은 이렇다할 뒷풀이 없이 자리를 툴툴 털고 일어나 빠르게 한국기원을 빠져 나간다. 승부 결과에 초탈한 승부사란 없다. 승부를 포기하지 않는 한 프로에게, 패배란 한차례 스쳐가는 열병과 같은 고통이다. 어쩌다 패하고도 허허, 하고 웃는 프로가 있다면 그가 아직 승부를 포기하지 않은 프로임에 틀림 없다면 그 웃음 속에는 뼈를 깎는 아픔이 감춰져 있을 터. 얼마전 강 8단은 우연한 술좌석에서 이렇게 토로한 바 있다.
"이대로 주저않고 싶지는 않은데 몸이 말을 안듣네요. 가끔씩 `몇년쯤 눈이 트일 때까지 한적한 절에 들어가 정신을 가다듬고 공부를 더 해볼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소주잔을 만지자거리며 안주접시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그의 표정이 왜 그리 비감하던지. 이미 저단시절에 도전무대까지 밟았던 그다. 86년에는 김인 9단을 3:1로 꺾고 이 기전(박카스배 천원전)의 � 줄이었던 제4기 박카스배를 차지해 국내 바둑계에 몇 안되는 타이틀홀더로 기록된 강자가 바로 강훈이다. 어쩌면 강훈의 비애는 그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프로바둑이 척박하던 시절부터 오직, 바둑외길을 걸어온 많은 중견기사들의 것인지도 모른다. 사회라는 틀안에서 한 가정을 이끌어가야할 가장으로서 규정된 삶에 찌들리며 허위허위 떠내려가다 눈을 부릅 떠보니 좋은 환경, 좋은 스승 밑에서 쑥쑥커오른 신예들이 이제 그만 자리를 비켜달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프로의 길이 그들 자신의 선택이었던 것과 꼭 같이 이 모든 결과 역시 자신의 몫일 수밖에 없다. 이겨내고 극복해내지 않으면 도태할 수밖에 없는 냉엄한 프로의 세계. 오늘은 `역류'를 꿈꾸는 모든 패자에게 갈채를 보낸다(88…80/ 91…17). 148수 끝 백 불계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