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 소설] LOVE LOVE LOVE..............이규형(13)
기사입력 1996년 06월 17일 21시 34분
///// 보디가드(6) ////. 혜령은 빅토리아 파크 정상에서 저 아래를 내려봤다. 소위 백만불짜리 야경에 감동한다는 그 장소다. 아직 황혼이라 본격적인 어둠은 내리지 않았다. 섬과 저멀리 구륭반도 해안에 펼쳐진 빌딩 숲들이 석양으로 물들고 있었다. 바다는 붉은 보석들로 깔아 놓은 듯 환상적으로 빛났다. 그러나 그녀에게 더욱 더 환상적으로 빛나는 건 두발자국 옆에 떨어져 있는최대왕의 얼굴이었다. 사내답게 짙은 눈썹과 예리한 눈망울, 과묵하게 꾸욱 다문 입가와 얼굴표정엔 이사람의 캐릭터가 있다. 강하면서도 인간적인 어떤 것, 검은 풀로셔츠를 입은 그 역시 눈을 지그시 한 채 핑크 빛 보석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혜령은 오늘까지 의도적으로 이 사내를 피하고 있었다. 그날의끔찍한 총탄 핏물이 또 퉁겨오는 느낌을 받을 것 같아서다. 그러나 오늘아침에야 혜령은 마음을 정했다. 침착하게 자기생명을 지켜 준 이남자를어떻게 대해야 할까를. 아까 호텔방을 나올 때 매니저에겐 오늘만은 혼자 있겠다 말했다. 로비로 내려가면 웅크린채 차가운 눈빛을 뿜고 있을 최대왕이 있는걸 알고 있다. 그녀는 혼자 외출하는 척하면서 자연스럽게 대왕을 동반하고 호텔로 나왔다. 둘은 택시를 잡아타고 섬에 있는 시티홀에서 내려 바다로 가는 길을 산책했다. 그리고 케이블카로 이곳으로 올라온 것이다. "지금부터 우리 갈 곳이 있어요". 혜령은 아까 바닷가 산책로를 걸을 때 결심했었다. "내려가요 우리 빨리!". 그녀는 앞에 서있는 대왕의 팔짱을 살며시 잡아 끌었다. 해안에 있는 작고 예쁜 호텔에서 두 사람은 사랑을 나누었다.
대왕은 너무나도상상못한 일이라 몸이 굳어버렸다. 첫번째는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좋긴 했지만 순간적으로 끝났다. 잠시후 두번째로 사랑을 나눌 땐 훨씬 깊고 평온한 상쾌함이 찾아왔다. "날 좋아해요?". 혜령이 시트에 몸을 붙인 채 물어본다. 대왕은 그 말에 대답하기가어색해서 그냥 눈을 끄떡거려 답했다. "으응...". 대왕이 얼굴을 돌려 그녀를 보자 혜령은 찡긋 웃으며 창피한 듯 흰시트를 코까지 덮어가렸다.
대왕은 몹시 갈등하고 있었다. 이 말을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사랑이란말... "저기 말이야, 우린 이제부터 어떻게 되는 거지? 우린 사랑할 수 있는건가?". 혜령이 잠시 침묵을 지키다간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과 함께 대왕은 벌떡 몸을 일으켜 냉장고에서 콜라 캔 한개를 꺼냈다. "너무 급하게 오느라 반지를 못사왔는데 임시로 끼워줄게 이 반지를..". 그는 콜라 캔의 손가락으로 따는 꼭지를 뗀 뒤 그녀의 왼손 네번째손가락에 살짝 끼워줬다. 혜령의 눈에 감격의 눈물이 맺혔다. 평범한 중류 가정의 막내인 나, 보디가드가 되어 이곳 에서 잘나가는 미녀배우와 사랑에 빠지다니. 갑자기 인생의 한 구석이 확 밝아지는것을 느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