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검무정] <제18화> 애욕의 소용돌이 (6)
기사입력 1996년 06월 15일 15시 48분
추월야접.
그녀는 과연 중원의 대도(大盜)다운 신법을 구사했다. 언제 어느 곳에서 출현했는지 전혀 짐작할 수 없는 몸놀림.
추월야접은 묵양대인과 모용추가 사라진 별각으로 접근한다. 매우 조심스러운 동작.
별실안은 의외로 조용했다. 내공을 집중시키자 그제서야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용추의 교성이었다.
"황보낭자는 비단 무예의 조예뿐만 아니고 오성(悟性)이 남다르니까 지금의 처지를 확실히 파악해서 몹시 고분고분해야 하지 않을까?"
황보백령은 앙칼진 대꾸를 한다.
"그대라면 그렇겠지. 하지만 난 아니야."
모용추가 조소를 머금었다.
"언제까지 사형께서 기다려줄지 모르겠지만 내 짐작으로는 이 밤을 넘기기 어려울 거 같구나."
일심부주는 내심 당혹감을 느끼며 끼어들었다.
"사매는 날 놀리고 있군."
모용추는 어울리지 않게 얼굴을 붉히는 묵양대인을 보며 소신을 굽히지 않는다.
"만일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면 어째서 이 야심한 밤에 경비무사들을 물리치고 황보낭자를 만나러 왔겠소? 낭자는 심사숙고하여 대답하시오."
황보백령은 무표정하다.
"당신네 사형제는 고문 수법이 매우 특이하구려."
묵양대인은 빙긋 웃었다. 웃음에 매달린 살기는 여전했다.
"봉황시의 비밀을 말해라. 그대가 알고 있는 봉황제전에 관해서도 모조리...!"
"싫다."
그녀는 여전히 당당하다. 전혀 겁을 모르는 사람같다.
일심부주 묵양대인은 사매를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사매가 수고를 해야 할까보우."
"사형은 눈치를 보실 필요가 없습니다. 소녀는 이미 사원과 선약이 있습니다."
묵양대인의 눈매가 가름해진다.
"사매는 설마..."
모용추는 예의 교태로운 표정을 지었다.
"설마... 무엇입니까?"
묵양대인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모용추란 이름의 사매는 늘 혼란의 이름, 신비의 대상. 자신의 영혼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악마의 심장을 소유하고 있는 애욕의 덩어리.
모용추는 묵양대인의 가슴을 가만히 어루만진다.
"무리하지 말아요. 사형."
묵양대인의 노구가 가볍게 진저리쳤다. 모용추는 황보백령에게도 속삭인다.
"사형은 매우 숙련된 솜씨를 지니고 있지. 어쩌면 이소야 따위는 까마득하게 잊을 수도 있을거야. 오늘은 아주 쾌적한 밤이 될것같아."
그녀의 미소는 섬뜩한 칼날이 되어 황보백령을 난자했다. 황보백령은 아득한 나락으로 곤두박질치는 느낌이었다.
모용추는 사라졌고 묵양대인의 손길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