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어학 연수생] 일부 국내서 탈선 연수
기사입력 1996년 06월 14일 16시 41분
##돈 받은뒤 부모몰래 예약 취소 ##체류비용으로 호텔-룸살롱등서 오렌지족 행세 14일 새벽 1시 서울 강남구 논현동 R호텔.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모자를 뒤집어 쓴 남자들이 호텔 로비를 나와 황급히 모범택시를 잡아 탄다. 목적지는 신사동 J룸살롱.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아가씨와 방금 호텔방에서 나온 이들은 로비를 빠져나오면서 잠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혹시나 자신을 알아볼까 두렵다는 듯 사람들의 시선이 있을때마다 모자를 귀밑까지 질끈 눌러썼다.
마치 `와 아이들'처럼 자신의 신분노출을 꺼리고 있는 이들은 사실은 보통 대학생들이다. 보통 젊은이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현재 해외어학연수를 떠나 한국에 없는 것으로 돼있다는 점이다. 부모에게는 어학연수를 떠난다고 해놓고 그 돈으로 시내 호텔을 전전하며 불야성의 밤을 즐기고 있는 것.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숨기는 것은 국내에 있다는 사실이 행여 부모 귀에 들어가면 안되기 때문이다.
일주일전 미국으로 2주짜리 단기 어학연수를 떠난 것으로 돼 있다는 주모군(21.S대 휴학생)은 "아버지로부터 비행기티켓과 체류비용으로 300만원을 받았다"면서 "국내에서는 그 돈의 절반만 써도 외국에서 보다 더 신나게 2주일 정도 즐길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 대부분이 고교시절부터 1년이 멀다하고 해외를 다녀온 경우가 많아 외국여행에 대한 환상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데다 몇번 외국을 드나들면 우리나라만큼 놀기 좋은 곳이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는 것.
주군의 고교동창 윤모군(21.D전문대)은 "부모님이 마침 유럽여행 중이어서 집에 전화를 걸지 않아도 된다"며 지금이 더없이 좋은 기회인 것처럼 너스레를 떨었다.
"외국은 밤이 되면 편의점 말고는 다닐 곳이 없지만 우리나라는 안 그래요. 새벽 3~4시까지 문 연 곳이 널려 있잖아요. 여자애들도 맘대로 만날수 있고…."
세명 여행사의 박양수씨(31)는 "최근들어 일부 오렌지족들의 경우 어학연수를 신청하자마자 환불을 요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그 가운데 상당수는 부모들로부터 용돈을 얻기 위해 어학연수를 빙자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박씨는 "자녀들에게 돈만 주고 일일이 확인하지 않는 무관심한 부모들이 적지 않은 때문"이라며 "부모들의 무관심이 자식을 자칫 패륜아로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