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화> 애욕의 소용돌이(4)
기사입력 1996년 06월 13일 15시 09분
**"어린 것이 입이 거칠구나"
깊이 잠들어 있는 표국내의 내원.
심야의 달빛만이 교교할 뿐, 그 흔한 풀벌레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불쑥 적막한 어둠으로부터 그림자 하나가 튀어나왔다.
묵양대인이었다.
그는 노인이었고 노인들은 본래 잠이 없는 법이었다. 묵양대인의 움직임은 마치 고양이 걸음과도 같았다.
전혀 기척이 없었다.
일심부주 묵양대인의 발걸음이 어느 별각(別閣)의 문 앞에서 우뚝 멈추었다.
"물러가랏."
짤막한 명령이 떨어지는 순간 그 별각의 지붕위에서 두 개의 인영(人影)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사라져 갔다.
별각안으로 들어서는 묵양대인.
비교적 단촐하게 꾸며진 침상 위에 한 여인이 누워 있었다.
황보백령이다.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다만 혈도가 제압당한 듯 꼼짝도 못하고 있었고 안색은 백지장처럼 창백했다. 미간의 생사탈혼침도 제거되어 있었다.
눈을 뜨는 황보백령.
일심부주를 발견한 그녀의 눈은 적의(敵意)로 이글거렸다.
"황보백령, 그런 눈으로 나를 볼 것 없다. 오히려 쥐새끼와 벌레들이 득실거리는 뇌옥 대신 이렇게 아늑한 정실에 모신 것을 감사해야지."
황보백령은 침착했다.
"일심부주, 내 몸에 어떤 금제를 가했는가?"
"쯧쯧... 어린 것이 입이 너무 거칠구나."
"자격이 있는 사람만이 내게 존대를 받을 수 있다."
묵양대인은 음흉하게 웃었다.
"아마 중원에서 너에게 존대를 받을 만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는 않다."
묵양대인이 흠칫 굳어졌다.
"그런 자가 존재한단 말이냐? 중원무림 전체가 너의 복수의 대상이 아니었냐?"
"강호가 넓고 넓거늘 어찌 의인(義人)이 없을손가?"
묵양대인은 갑자기 가소롭다는 듯이 대소를 터뜨린다.
"하하하... 하지만 지금의 널 구해줄 사람은 단 한명도 존재하지 않으니 그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황보백령은 그 소리를 듣자 가슴이 콱 막히는 기분이었다. 지난 며칠간의 곤욕이 눈앞을 스쳐갔다.
그때마다 떠오르던 얼굴이 또 그리워지고 있었다.
일심부주 묵양대인이 그녀 곁으로 바싹 다가들었다. 황보백령은 경계의 눈빛을 던진다.
"내게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냐?"
묵양대인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게 번쩍였다.
"그대는 내게 솔직하게 알려줄 것이 있지 않느냐. 이제는 말문을 열어야 하지 않겠느냐?"
이때였다. 밖에서 아주 미세한 인기척이 일어난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