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가 쓰는 ML 메시지]
기사입력 1996년 06월 11일 15시 28분
**'한국사람에만 사인' 억울한 누명
며칠 전 구단의 홍보실 직원이 오더니 어떤 팬으로부터 항의 전화가 왔다고 전해 주었다.
내가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면서 한국 사람만 사인을 해주고는 갔다는 것이다.
나의 에이전트인 김철원씨 사무실에도 비슷한 전화가 온 적이 있었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피할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팬들의 사인 공세다.
사인은 보통 경기전 배팅 훈련이나 몸풀기를 끝내고 클럽하우스로 돌아가기 전과 경기가 끝난 뒤 선수 주차장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해주는 경우가 가장 많다.
경기 도중이나 훈련 도중에는 절대 사인을 못한다.
한번 사인을 하기 시작하면 워낙 사람들이 몰려들어 보통 20명 정도는 하게 된다.
덕아웃 앞에서 서서 관중석에서 던져 주는 공이나 노트, 사진, 모자, 종이 등에다 사인을 해준다.
항상 사인을 해주는 것은 아니며 다른 훈련이나 준비가 필요 없고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 가능한 한 사인을 해주려고 한다.
그런데 그냥 들어가려다가도 한국말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그냥 지나치기가 참 힘들다.
그래서 사인을 시작하면 금방 20여개의 사인을 해주게 된다.
나는 주로 어린 아이들 위주로 사인을 해준다.
그런데 선수들의 사인 공 등은 팬들에게는 좋은 추억 거리지만, 장사꾼들에게는 상품이 되므로 선수들은 상당히 신경을 쓴다.
때로는 장사꾼들이 아이들을 시켜 사인을 받아 달라고도 하고, 자기들이 팬인 것처럼 가장해 사인을 요청하기도 한다.
그래서 선수들은 대형 사진에는 사인을 하지 않으며, 공에 사인을 할 때도 특정한 위치에 사인을 요구하면 들어주지 않는다.
선수들에게 사인은 추가 수익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상업적으로 사인을 하는 경우는 두 가지로 나뉜다.
그 하나는 특정 회사와 계약을 하고 수백개에서 때로는 몇천개의 공을 사인해 주고 보수를 받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사인회를 마련해 팬들과 직접 만나면서 사인을 해주는 경우도 있다.
이때도 입장료를 받거나 사인할 상품들을 현장에서 판매하며, 수익금의 일부를 받기도 한다.
혹은 1시간당 2천~3천달러를 받기로 하고 사인회에 참석한다.
나는 최근 `스코어보드 클래식 마케팅'이라는 회사와 계약을 하고 1천개의 공을 사인해 주었고, 지난 11일에는
코리아 타운내에서 팬들을 위한 사인회를 열기도 했다.
처음 여는 사인회였는데 수익금은 모두 뜻깊은 일을 하는 단체에 기부했다.
마이너리그부터 따지면 나도 참 많은 사인을 해주었다.
처음에는 C.H PARK으로 했다가 우리말로 도 써봤고, 요즘은 영문 필기체 Chan Ho Park으로 변했다.
사인하는 일이 때로는 귀찮기도 하지만 그것은 인기도와 비례한다.
더욱 많은 팬들이 나의 사인을 요청하게 되도록 열심히해 최고의 투수가 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