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사 승무원이 만난 별난 배낭족]
기사입력 1996년 06월 10일 16시 35분
**공동경비 쓰다 마음 안맞아 티격태격 **비자금까지 들통나자 절교선언 여행은 동반자끼리 마음이 맞아야 즐겁다. 일행 중 찔뚝거리거나 질퍽대는 사람이 있으면 여행이 아니라 `고행'이 되는 것이다. 특히 두셋이 어울려 떠나는 배낭여행은 마음 궁합이 맞지 않으면 `동원훈련' 가는 것보다 더 빡빡하고 힘들다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동남아 최고의 환락가로 꼽히는 태국 의 팟퐁거리에서 만났던 20대 청년 2명도 사사건건 서로 삐걱대다가 배낭이 아니라 고생보따리여행을 했다는 것이었다.
회사 입사 동기인 T와 K는 휴가를 함께 받아 동남아를 순회하며 세계화 실습을 하고 있는 중이었는데, 개성이 너무 틀려 피곤하다고 했다.
애당초 일심동체로 공동 경비를 쓰기로 했으나, 한쪽에서 점심을 햄버거로 떼우자면 다른 쪽에선 한식당 가자는 식으로 사사건건 맞붙는 바람에 굶기가 일쑤였다.
T는 숙박비를 아껴 잘 먹자는 파였고, K는 잠은 좋은데서 자고 식사는 대충대충 때우자는 주의였다.
한번은 T가 10달러 더 아끼자고 해서 허름한 숙소에 들었다가 국제 호모족들의 밥이 될뻔했다가 탈출한 적도 있었고, K의 `아무꺼나'에 넘어가 길거리에서 쌀국수를 사먹다가 약값이 5배 더 들었던 일도 있었다.
태국여행 마지막 날, 이들은 더이상 친구끼리 티격태격 하지말자면서 팟퐁거리를 어슬렁거리다가 삐기에게 걸려 엄청 바가지를 덮어썼다는 것이다.
"여자 누드쇼에 입장료 무료, 맥주 1병에 75바트(2,500원)라는 삐끼 말에 이 친구가 홀까닥하는 바람에 다 털렸심니더. 계산은 600바트인 거 같았는데, 그 놈아들은 600달러라고 우겨대는데…"
T가 나를 보면서 K를 원망하자, K는 적반하장이라고 나섰다.
"삐끼보다 더 괘씸한 놈은 바로 이 친굽니더. 여행다닐 땐 돈 없다고 그렇게 짜게 놀더니, 술집 어깨들이 협박하자 몰래 목걸이 볼펜 등에 숨겨둔 비자금 500달러가 들통났지 뭡니까? 니 이제 서울가면 내보고 친구라 카지마라. 부끄럽다."
T는 계면쩍은 표정을 지으며 코미디 대사처럼 한마디 했다.
"알았다, 친구야."
이민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