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동풍(東風)은 용(龍)을 부르는가 (30)
기사입력 1996년 06월 09일 17시 50분
자신의 신분을 어찌 의 촌장이 알고 있는가? 이때 촌장이 머리를 땅에 틀어 박았다. 그리고는 이마에서 피가 나도록 내리 찧는게 아닌가. 그리고는 울었다.
"으흑...흑... 고야공주는 돌아오셨습니다. 귀하의 은혜에 관하여 설명하시고... 그날밤...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습니다." 갑작스레 숨이 막혔다.
죽다니...아직도 얼마나 더 아름다운 날을 살아가야할 나이던가.
떠올랐다. 고야공주와 함께 헤어지던 그 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이다. 그 날은 정말 그림 같은 노을이 붉게 지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원한다면 자신의 몸으로 구명(救命)의 은혜에 보답 하겠노라고. 수줍어 하던 고야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걸 거절했었다. 석양이 마음에 들어 밤새도록 걸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자와 동침할 수 없는 몸이라고 했다. 고야공주는 그제서야 물러섰다. 영패를 건네주며 고개를 돌리던 그 모습이 어째서 그렇게 슬퍼 보였는지 이제 짐작할 수 있을것 같았다. 이소야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무현은 사람의 눈빛이 그처럼 차갑게 반짝이는지 이소야를 통해서 처음 볼 수 있었다. 촌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영패는 우리 인들에게는 칸의 상징과 다름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에게 어떤 명을 내리시더라도 우리들은 모두 복종하겠습니다. 목숨을 바치라 하면 목숨도 바치겠습니다." 이소야는 입을 열지 않았다. 적어도 이 서러운 밤 동안은 절대 말이 새어 나오지 않을것 같았다. 무현이 물었다.
"고야공주는 어디 모셨소?"
몽고전사의 수장이 안내를 자청했다.
"모시겠습니다."
그들은 이소야의 혈도와 무현의 포박을 풀어주고는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며 부락의 중심으로 이동했다. 무현이 이소야의 기색을 힐끔 살펴 보았다. 이소야는 마치 굳어있는 석고와 같았다. 그들은 묻지도 않았고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냥 걸을 뿐이었다. 고야공주의 유체는 부락을 이루고 있는 정중앙의 단상위 유리관속에 눕혀져 있었다. 그녀는 잠자는 듯한 모습이었다. 얼굴은 곱게 화장을 하고 있었고 복장도 화려하였다. 전혀 죽은 사람으로 보여지지 않았다. 이소야가 가만히 손을 뻗었다.
싸늘한 유리관의 감촉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그 차가움이 이소야의 심장까지 꿰뚫는 기분이었다. `우습지만 당신 앞에서 한 가지를 맹세할까 하오. 타르무를 용서하지 않겠소. 그는 너무 많은 죄를 저질렀소.' 마치 고야공주가 대꾸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기대하겠어요.'
이소야의 시선이 무현에게로 돌아왔다. 무현은 그의 기분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달빛이 흐려지고 있는 밤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