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소설] LOVE LOVE LOVE....이규형(6)
기사입력 1996년 06월 09일 15시 53분
///// 사랑의 홈런(6) //////. 지훈은 되도록 빨리 머릿속을 체조시켰다. 고은비. 이 아이는 지금 무슨 의도로 안타를 치지 말라는 걸까?. "저기 말이야. 내가 삼진을 계속 먹는꼴을 보면 속이 시원하겠어?그럼 그렇게 하지 뭐?". 은비가 수화기 속에서 야무지게 응답해온다. "야구가 더 중요해요? 내가 더 중요해요?". 아하, 그거였군 옛날 학생때 호기심으로 본 `커피를 두릴까요 저를드릴까요?'라는 야시러운 책이 생각났다. 히트를 선택하실래요? 저를 선택하실래요?. "야, 알았어. 그러니깐 내일 히트치면 다신 안만나겠다 그거지? 까짓거 그게 뭐 어렵겠어, 우리 은비를 위한거라면 100번 연속 삼진아웃을 당해 대한민국 기록을 세운다 해도...".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전화를 딸칵 끊겨 있었다. 시합은 백중세였다. 프로로서 이런 얘기했다간 당장에 모가지겠지만 지훈은 2번째 타석에서 고의로 삼진아웃을 당했다. 어제의 은비 전화때문이다. 마음 속에서 쳐야 되나 말이야 되나 갈등을 해대니까 안그래도 강속구로 유명한 상대투수 녀석의 볼이 아예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에라,포기다 포기. 하여튼 오늘만 넘기면 은비와 모든 게 다 잘되는 거 아닌가. 백중세의 투수전은 중반 이후 무너졌다.
상대방 타자애들이 방망이질을 해대기 시작하더니 이쪽 투수가 주저 앉을 때까지 불나게 베이스를 달려댔다. 홈런, 3루타, 포볼, 희생 플라이, 다시 히트 또 히트, 지훈의 생각으로도 투수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있었다. 교체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데도 감독은 용감하게 그대로 밀고나가다 그대로 박살나 끔찍한사태가 발생했다. 스리런 홈런을 먹은것. 단박에 6대 빵, 게임은 종쳤다. 에이! 감독도 혹시 숨겨 놓은 정부가 일부러 게임에 지지 않으면 헤어지겠다며 협박을 해대는 거 아닐까?. 세상에! 그런데 이건 또 뭔가, 홍수 뒤에 가뭄, 가뭄 뒤에 홍수라더니 지훈네 동료들도 갑작스럽게 방망이에 힘을 불끈불끈 폭발시키기시작한거다. 타석마다 첫날 밤 색시처럼 곱게 보낸 그들이 8회말에 들어서자 용광로처럼 펄펄 끓기 시작한 것이다. 갈기며 히트였다. 6번타자부터시작된 베이스 행진이 투아웃까지 오는 동안 타자일순, 5번타자인 지훈까지 돌아온 것이다. 전쟁터에서 용기는 전염된다는 말이 있다. 팀 동료들의 잘 쳐야겠다는 오기가 다이너마이트차선으로 연쇄폭발, 현재 스코어 6대3에 주자만루상황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지훈은 다리가 후들거렸다.
관객들이 지훈의 이름을 합창으로 꽥꽥 외치며 홈런! 홈런!을 부르짖고 있지 않은가. 만약 여기서 한방 넘기면 졸지에 7: 6 대역전극이다. 상대 에이스투수는 평소 방어울 2점미만으로 지금 벌어진 상황이 어이없는 듯 지훈을 본다. 두번 다 삼진을 먹은 지훈을 우습게 보며 앞의 타자를 고의 사구로보내고 그와 승부하고 있다. 먼저번 경기에 연타석 홈런을 쳤던 지훈아닌가. 날 무시 한다구?. 이걸 한번 맘먹고 두들겨서 엎어버려?
그러나 그순간 고은비와는이별이란 생각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