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검무정] 제17화 동풍은 용을 부르는가(23)
기사입력 1996년 06월 01일 14시 51분
남궁도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칼끝은 여전히 이효봉을 겨누고 있었다.
이효봉의 신검은 아직 그 자태를 드러내지 않았다. 이때 인기척이 일어나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석부용이다.
그녀는 여전히 빼어난 자태 였지만 안타깝게도 한쪽 눈을 검은 안대로 가리고 있었다. 이미 조화를 잃은 얼굴.
요염함은 찾아볼 길이 없었다.
"이장주께서는 이렇게 한가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는데요?"
"그럴 것이라 생각한 이유는 있는가?"
그래도 염정선라 석부용은 예전의 교태가 조금은 남아 있었다.
"물론이지요. 장주께서 혈안이 되어 찾는 물건이 해동검결 아닙니까?"
이효봉은 크게 동감한다.
"그렇다."
석부용은 입술을 바싹 깨물었다.
"하지만 그건 검결이 아니라 동방왕가의 학문을 수록한 제왕의 도가 아닌지요?"
이효봉은 몹시 놀란다. 이와 같은 인물을 놀라게 하는 일이 세상에는 아직도 존재하는 모양이다.
"제왕의 도(道)?"
석부용은 망설임이 없다.
"이소야가 그걸 소지하고 달아났어요. 내 짐작이라면 심양으로."
장내의 인물들은 너무 뜻밖이라 어리둥절한 얼굴들이었다.
이효봉이 다급한 신색이 된다.
"무슨 소린가?"
"내 눈을 이 지경으로 만든 엽사(獵師)가 이소야를 추적하고 있었어요. 어쩌면 지금쯤... 아니, 벌써 그에게 당했을런지도 모르죠."
이효봉은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그 엽사도 제왕의 도를 노리고 있었던가?"
"모르긴 몰라도."
이효봉이 갑자기 남궁도에게 소리쳤다.
"미안하다. 우리의 승부는 차후로 미뤄야겠구나."
남궁도가 가로막을 사이도 없이 이효봉은 실내를 박차고 나갔다. 어깨가 움찔거렸다고 느끼는 순간 이미 그의 신형은 장내를 벗어나고 있었다.
남궁도가 추격하려는 순간에 그의 손목을 움켜쥐고 제지하는 건 군사 방일비다. 석부용도 그를 막았다.
남궁도는 추적을 포기할 수 밖에는 없었다.
이때 이효봉은 최대한의 경공술을 발휘하여 공간을 가로 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뒤를 급박하게 따르는 그림자도 보였다.
금란이었다.
"이소야님의 행방을 알아내신 거예요?"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제왕의 도! 그 실체가 드러났다는 것이다."
동방산장의 장주 이효봉.
그에게 있어서는 아들의 안위 보다도 제왕의 도가 더 중요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