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동풍(東風)은 용(龍)을 부르는가 (8)
기사입력 1996년 05월 16일 15시 21분
여인은 비음(鼻音)을 토했다.
"흐응."
몸짓은 교태로웠다. 눈빛은 몽롱 하였고 입술은 약간 벌어져 있었다.
격렬한 쾌감이 육감적인 여인의 도화빛 살결위로 파도 처럼 밀려 왔다. 사내는 거칠었다. 그는 마치 길들여지지 않은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격식도 없었고 순서도 없었다.
`이 사내는 야수야.'
여인이 생각할 때 갑자기 사내의 움직임이 멈춰졌다. 자극이 없는 흥분은 이미 흥분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었다.
여인은 놀란 눈으로 사내를 바라 보았다. 까닭없이 슬픈 눈길이 거기 있었다.
"왜요? 내가 잘못했나요?"
사내가 갑자기 물었다.
"넌 누구에게 순결을 잃었느냐?"
여인은 어안이 벙벙하였다. 절정에 올라있는 순간에 느닷없이 이 사내는 엉뚱한 질문을 하고 있었다.
이런 종류의 사내는 대단히 위험하다는 걸 오랜 기녀의 생활을 통해 터득한 경험이었다. 여인은 즉각 대꾸했다.
"아저씨 같은 분은 아니었어요."
"나와 다르다면?"
"그 사람은 우리 마을의 유지였어요. 우리 아버지와 나의 주인이기도 했고요. 그는 몹시 배가 나온 사람이었지요. 내 나이 열한 살이었지요. 그런데 지금도 다른 기억은 잘 떠오르지 않아요. 단지 그의 뱃살에 눌려 숨을 쉬기 어려웠던 것이라던가... 기름이 잔뜩 끼어 있던 배를 보며 어쩌면 저렇게 우리 아버지의 앙상한 뱃가죽과 정반대일까 하던 생각 뿐." 사내가 쿡 웃었다. 술냄새가 풀풀 풍겼다. 기녀는 알몸을 가릴 생각도 않고 사내에게 바싹 다가들었다.
"설마 아저씨는 내게 순결 따위를 기대하고 계셨던건 아니었겠죠?"
기녀는 사내의 가슴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사내는 멍 하니 천장을 바라다 보고 있었다.
"넌 혹시 그 배불뚝이를 그리워 하고 있는 건 아니냐?"
기녀는 어이없는 얼굴이었다.
"지금 농담을 하시는 건가요?"
"그를 죽이고 싶으냐?"
"때때로."
"너의 순결을 빼앗아갔기 때문이냐?"
기녀는 웃었다. 일그러진 웃음이었다. 이러한 웃음은 그 누구도 흉내내기 어려운 복잡한 웃음이었다.
"그것이 우리의 잠자리가 중단된 것과 관계가 있나요?"
사내가 대답했다.
"그렇다."
"아저씨는 정말 이상한 분이군요. 어느 누구도 흥분된 순간에 그런 질문을 하지는 않아요. 아저씨는 대체 누구죠?"
"내 이름은 사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