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성 칼럼 - 부자만 편케할 교통 혼잡세
기사입력 1996년 05월 15일 16시 02분
9월부터 남산터널을 통과하는 승용차에 교통혼잡세를 물린다고 한다. 전처럼 100원이 아니라 2,000원~ 3,000원 정도로 책정할 방침이다.
정책배경은 "차몰고 다니는 시민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터널 지나간다고 돈내고, 도심에 차세워 놓는다고 돈 더많이 내게 해서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쪽으로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평균적인 시민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느낌이 든다. 가뜩이나 비좁고 불편한 서울의 교통시설을 돈많은 사람들에게 내주라는 이야기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왕복 4,000~ 6,000원은 티코나 프라이드 모는 처지로는 큰 돈이지만
대형 승용차나, 국산차 서너대값인 외제 고급 승용차타는 입장에서는
호텔 커피 한잔 값이다.
우리나라 자동차정책-교통정책이란게 돈있는 사람들에게는 늘
맥을 추지 못했다. 10부제 하면 홀-짝수 두대 사면 되고, 1가구
2차량 중과세쯤이야 점심 몇끼 수수하게 먹으면 해결될 일이었다.
그런 것이 이번에는 돈있는 사람들은 세계 최악이라는 서울의
교통사정에 아랑곳 없이, 서민 약올리듯 편하게 다니게 됐다.
돈내면 편해진다-. 자본주의 논리지만 그건 천민 자본주의다. 정부가
그걸 조장해서는 안된다. 경제정의가 문제되고 있는 우리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올림픽때 10부제가 성공한 것은 계층 구분없이 불편을 똑 같이
나누어 갖는 제도였기 때문이다.
수익자부담 원칙이라고 하지만 교통시설은 시민 모두가 세금을
내서 만든 것이다. 그걸 이제 몇몇 돈내는 사람들이 편리하게
쓰게 한다니 이치가 닿는가. 헌법소원이라도 제기해보자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그것이다.
이 터널은 남대문이나 청계천시장에서 장사를 하거나, 관공서- 대기업
본사 들락거리며 생업에 바쁜 서민-샐러리맨들에게 더 필요한 곳이다.
이런 사람일수록, 버스 불편하고 택시 못잡아 열받아 차 산 사람들이다.
고급차 탄 사람들이야 호텔 점심이나 먹고 백화점 갈 사람, 도심에 근무지가
있는 `여유있는 사람들' 빼고 누가 무슨 일이 많아 들락거리겠는가.
남산터널엔 티코 같은 소형차만 다니게 하자. 그래서 작은 차를 타는
사람이 편리한 사회, 돈을 낸다고 해서 교통난을 홀로 면할 수 없는
사회임을 선언하자. 교통정책은 그런 사회정의가 전제돼야 성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