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동풍(東風)은 용(龍)을 부르는가⑤
기사입력 1996년 05월 13일 16시 52분
청죽생은 매우 긴장한다.
"부주와 모용낭자가 돌아오고 있소. 만일 그들에게 발각된다면 무사하지 못할거요."
추월야접은 서두르는 빛이 없다.
"그쯤은 각오하고 들어왔어요."
청죽생은 태연자약한 그녀에 대해서 일말의 두려움마저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추월야접은 목숨을 건 도박을 시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녀는 삶에 대한 의욕을 포기 했는지도 모른다. 애증(愛憎)의 막다른 벼랑에 서서 여인이 내린 결단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청죽생은 이제 다급하다.
"어서 피하시오."
"당신의 신분을 솔직히 말해 준다면 난 언제든 떠날 수 있어요."
"난 일심부의 청죽생이오."
"그렇다면 그들의 등장을 전혀 두려워 할 필요가 없지 않나요?"
"그들이 두려운 건 아니오."
"두려운 게 있기는 있는 모양이군요."
청죽생은 탄식한다.
"내가 진정 두려운 건 청매가 그들에게 당하게 되는거요."
아! 청매라고 불렀다. 목전의 푸른 귀기가 감도는 신비의 중년사내 청죽생이 또 다시 추월야접의 잊혀졌던 이름을 불렀다.
추월야접은 무섭게 떨고 있었다.
죽음조차도 두려워 하지 않았던 이 여인이 왜 이토록 떨고 있는 것일까.
"당신은... 내게 청매라고 불렀어요."
청죽생은 눈을 지그시 감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소. 어서 여길 떠나시오."
추월야접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그녀의 가녀린 교구가 심하게 격동하고 있었다.
"난 십 이 년간 당신을 찾아서 헤맸어요. 내 스스로 얼굴을 망가 뜨리고 미친 듯 떠돌아 다녔어요. 왜 내 곁을 떠난 건가요?"
청죽생의 입술에서 피가 흘렀다. 꽉 다문 이빨로 인해서 입술이 찢긴 것이리라.
"변명을 듣고 싶은거요?"
"아니오."
"그렇다면 진실을 알고 싶은거요?"
"아니오."
의아해진 청죽생.
추월야접은 웃는다. 흉칙한 얼굴의 미소는 보는 이로 하여금 역겨움까지 느끼게 한다.
"내가 진정 알고 싶은건 아직도 날 사랑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에요."
청죽생은 슬픔과 충격을 동시에 느낀다. 여인의 순정(純情)이란 이토록 무섭고 지독한 것이었던가. 인기척이 멀지 않은 곳에서 느껴졌고 청죽생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아니라면 내가 왜 당신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겠소."
"아..."
추월야접이 탄성을 토하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