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현5단 ●김영삼2단=2차예선 결승 제12국
기사입력 1996년 05월 13일 16시 52분
제5보(39~56)=흑 39의 걸침은 노타임.
백은 6분을 소비한 끝에 40으로 응수하며 `실리노선'을 천명한다.
상용수법이기는 하지만 이 처진 날일자도 근래에 부쩍 빈도가 늘었다.
극히 실리적인 이 응수법 하나에도 현대바둑의 흐름이 그대로 드러난다.
세계를 대표하는 동양3국 한-중-일 프로바둑계는 지금 실리에 밝은 기사들이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열도의 1인자로 복귀한 조치훈 9단, 중국의 마샤오춘 9단, 그리고 국내의 이창호 7단이 그렇다.
하변 흑 41, 백 42의 교환은 아까운 느낌이 있다.
여기는 언제고 흑 42로 응수를 묻고 싶은 곳. 좌상귀로 돌아와 흑 43. 파릇한 군기(軍氣)가 물씬 풍기는 양걸침.
백 44, 흑 45로 올라설 때 2선을 밀어간 백 46. 검토실의 열혈기사 하나가 기어코 꾸짖듯 한마디 한다.
"참, 지독하군. 여기는 백 1쯤으로 나가둘 자리 아냐? 아무리 실전적이고 유력한 것도 좋지만 돌이 중앙을 향해야지 이게 뭐야…."
백 40, 46이 악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렇게 `짜다'는 소리가 나올만큼 극히 계산적이고 실전적인 타법이 현대바둑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
6,70년대의 젊은 기사들이 절차탁마하던 시절, 고전의 명인, 고수들의 바둑에서 느꼈던 대하(大河)의 장중한 흐름이 점차 사라지고 있음을 아쉬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백 52, 54로 끼워 이을 때 습관처럼 즉각 호구이은 흑 55. 이 수는 어떤가.
검토실에서 `늦다'는 소리가 나오자마자 백 56이 떨어지고 감탄사가 꼬리를 문다.
"컸다!"
흑 55로는 먼저 56의 곳을 지켜야 했다는 얘기. 백 56은 자체로도 크지만 좌하쪽 흑 석점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요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