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호가 쓰는 ML메시지 >
기사입력 1996년 05월 13일 14시 27분
## "아! 마늘이 먹고싶어"
미국에 온 이후로 줄곧 나를 괴롭힌 음식이 하나 있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 마늘을 아주 좋아한다.
2년전 에서 떨어진 한을 품고 의 더블A팀 미션스에
합류한지 얼마 안돼서 드디어 마늘 사건이 터졌다.
당시 나는 한국 반찬을 가져다 먹었는데 마늘 장아찌를 먹은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사실 당시까지 나는 다른 선수들이나 미국 사람들이 마늘 냄새를 싫어한다는 것을 잘 알지 못했다.
그런데 하루는 마늘 장아찌를 맛있게 잔뜩 먹고 갔는데 동료들이 계속 얼굴을 찡그리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유도 모르고 `이것들이 동양인이라고 나를 깔보나'하는 생각에 화가 났다.
그러다가 코치가 귀조을 해줘 원인이 마늘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로는 별수 없이 마늘을 자제하며 지냈다.
시즌이 끝나면 실컷 먹겠다는 각오로 억지로 참았다.
그런데 작년에 알바커키의 트리플A에서 또 한번 마늘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한번은 내 에이전트인 형이 나를 방문하면서 불고기와 마늘 장아찌 등 한국 음식을 가지고 왔다.
너무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을 대하니 나는 참지 못하고 양껏 먹어 치웠다.
그날은 바로 나의 등판일이었고, 다음 날은 장거리 달리기 등 훈련을 가장 많이 하는 날.
클럽하우스에서 온통 마늘 냄새가 진동했음은 당연한 일이고 동료들의 찡그린 얼굴에 화가 나면서도 나는 어쩔수 없이 `마늘 금지'를 스스로 다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난번 스프링 트레이닝에서는 결국 참았던 화가 폭발하고 말았다.
마늘을 계속 자제하던 나는 한국동포집에 초대받아 오랜만에 삼겹살과 생마늘을 앞에 두고 갈등에 빠졌다.
그러나 마늘과 삼겹살의 유혹은 도저히 견디기 어려웠고, 나는 뒷일은 나중에 걱정하기로 하고 배가 터지게 먹어댔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훈련을 하러 클럽하우스에 도착하니 선수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그러다가 내가 방귀를 끼었는데 이 녀석들이 방귀에서도 마늘 냄새가 난다며 놀려대는 것이 아닌가.
안 그래도 마늘 때문에 항상 마음이 찜찜하던 나는 분통이 터지고 말았다.
솔직히 말하면 치즈 노린내도 나로서는 참기 어렵게 독하지만 참고 지냈는데
어쩌다 마늘 한번 먹었다고 놀려댄다는 억울함에 나는 물통을 발도 걷어차고
집기들을 집어던지며 한동안 난동(?)을 벌이고 화를 풀어댔다.
내가 워낙 심하게 화를 내니까 클럽하우스가 조용해지더니 조금 지나 동료들이 내게 다가와 장난이었다며 사과를 했다.
동료들의 사과로 사태가 수습됐지만 나는 그 후에도 마늘을 멀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먹고 싶은 마늘, 하지만 시즌이 끝날 때까지 마늘 먹기를 참을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