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동풍(東風)은 용(龍)을 부르는가 (2)
기사입력 1996년 05월 10일 15시 47분
모용추의 등장은 충분히 놀라운 것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궁장 차림이었고 화사한 아름다움으로 황보백령을 압도하고 있었다.
황보백령의 눈이 가늘어진다.
"봉황의 열쇠는 이미 내게 없거늘... 필경 내게 기회를 주기 위한 방문이겠군."
모용추는 서두르지 않는다.
"부주를 농락한 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다르다."
"일심부주 보다도 더 음흉하다는 말인가?"
모용추는 교태롭게 웃는다.
"까르르. 날 사형과 비교하다니? 황보공주는 겨우 그 정도인가? 하기야 동방산장의 이소야에게 외면당했을 때부터 알아는 봤지만."
상처를 들추고 송곳으로 찌르는 모용추다.
황보백령의 가슴 깊은 곳에 사무쳐 있는 별리(別離)의 고통을 그녀는 사정없이 할퀴고 물어 뜯었다.
잔인한 년. 너는 어미의 자궁에서부터 악(惡)의 근본을 깨우치고 나온 악종이다.
황보백령은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게 원하는 게 그거냐? 이소야와의 관계를 물은 거냐? 그와 동침을 함께 했는지가 궁금하냐? 그가 잠자리에서 날 얼마나 달아오르게 했는지 알고 싶은거냐?"
평소의 황보백령에게서는 절대 들어볼 수 없는 소리였다. 궁수월은 당황하고 있었다. 묵기량은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가에 순간적으로 머물다 사라진 살의(殺意)는 소름이 오싹 끼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모용추가 힐끔 묵기량을 바라보았다.
"혈마사의 젊은 사주는 일신의 무예가 고강하기도 하지만 특별히 미인에게 관심이 있다는 걸 내가 알고 있는데》 또 두 사람의 은밀한 거래는 어느 선까지인가?"
마치 명문대가의 귀공자로 보여지는 호남(好男)의 묵기량이 참지않고 나선다.
"내가 모시는 주인을 능욕한다면 더 이상 용서못하오."
"옳지. 우리는 그때 승부를 보지 못했군."
"원한다면 언제든지 상대해 주리다."
모용추는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묵기량? 내가 어째서 그대를 살려뒀는지 정말 이해하지 못하는건가?"
"무슨 뜻이오?"
"젊은 여자가 젊은 사내에게 어떤 것을 바라는지 그대는 모른단 말인가?"
황보백령이 일갈을 토했다.
"추잡한 년."
그녀는 침상을 박차며 밖으로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어둠속에서 섬광이 발산됐다.
황보백령은 호선(弧線)을 그으며 정원의 모용추에게 쇄도해 들어갔다. 그녀의 손에는 어느 틈에 석 자에 달하는 검이 싸늘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모용추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상대는 환자였다.
그러나 칼은 단숨에 그녀를 토막낼 듯 무자비했다.